"사실 저는 아직 삐약삐약 사회초년생 병아리랍니다. 꼭 적어주세요."
2018.11.08

'그전까지는 허황되게 꿈만 큰 사람이었는데, 트레바리에 들어와서는 큰 비전을 가지면서 동시에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세상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멀지만 큰 꿈을 위해, 가깝게는 일잘러이자 좋은 리더가 되려는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트레바리 크루의 이야기입니다.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에서 열리는 독서모임들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아지트 리더 정지원 님을 만났습니다. (참,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 2층 왼쪽의 작은 크루룸에서 가시면 지원님을 만나실 수 있어요!)


(인터뷰/촬영 - 최성운 님)







#1 유학생, 잠깐 멈추다 


중국에서 오래 생활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고등학교 1학년부터 중국에서 다녀서 대학교까지 졸업했어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전공은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 국제관계학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한비야씨가 쓴 책이 한창 유행이었거든요. 사실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가서 뭘 배우는지도 모르잖아요. 국제관계학이라고 하면 졸업하면 UN에 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첫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 안 맞는다는 걸 느꼈어요. (웃음) 그래도 정치철학 같은 수업을 들은 건 좋았어요. 중국이다 보니 마르크스주의나 마오쩌둥 사상 같은 걸 배우거든요.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수업이니까, 재미있었어요.

 

한국으로는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요. 사실 졸업할 즈음에 소위 말하는 현자타임이 세게 왔어요. 그전까지 저는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만 골라서 했었거든요. 주변을 둘러보니까 선배들이나 후배들은 다 열심히 뭔가를 해왔는데, 저는 막연한 꿈만 가진 채로 실질적인 준비를 하나도 안 했던 거예요. ‘난 뭘 했나’ 이런 생각이 들고. 돌아와서, 집에서 한참 우울한 시기를 보냈었죠.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사건이 특별히 도움이 되었다고 짚을 수는 없지만, 집에 있으면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책에는 다양한 인생이 나오고, 주인공이 보잘 것 없는 삶을 사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꼭 내가 국제무대를 종횡하는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내 인생 전체가 실패한 건 아니다. 설령 실패면 어떻냐, 재밌게 살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요.

 

그렇게 털고 일어나서, 일단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고향이 부산인데, 서울로 올라와서 영어학원의 리셉션 데스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반복적이고 소소한 일이었지만, 여가시간이 많아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고요. 그러면서 점점 건강해졌던 것 같아요.





 

  

#2 동료를 찾다, 동료가 되다

 

트레바리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꼭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전에 다녔던 글쓰기 수업에서 트레바리라는 회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검색하니까 수영님 인터뷰가 나오더라고요. 읽으면서 ‘여기가 내가 일할 곳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전에 취준할 때는 지원서에 쓸 이야기가 안 떠올랐다면, 트레바리에 지원할 때는 어떻게 나를 보여주면 좋을까 고민하는 게 신났어요. 아마 모집공고에 ‘동료를 찾습니다’라는 말이 있었을 거예요. ‘저를 동료로 받아주십시오’라고 지원서에 적었어요. 패기 넘쳤죠. (웃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셨나 봐요.

 

좋은 일을 하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인지 ‘팔릴수록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걸 팔고 싶다’는 말에 꽂혔나봐요. 저는 물건을 팔 때 실제로 지니지 않은 가치를 가진 것처럼 포장해서 파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데, 트레바리는 그렇지 않다고 느껴서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고지식한 탓일수도 있어요. 아주 어릴때 읽은 책의 교훈들이 텍스트 그대로 저한테 들어와버린 것 같아요.

 

그전까지 멤버로 활동해본 적은 없으셨던 거잖아요. 실제로 경험하면서 예상과 달랐던 점은 없었나요?

 

적절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지만, ‘트레바리는 돈 많은 사람들이 지적 허영심을 채우려고, 아니면 이성을 찾으려고 오는 곳’라는 얘기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목적이더라도 어쨌든 독후감을 내야 모임에 나올 수 있고, 와서 손톱만큼이라도 달라지면 좋은 거라고 생각을 해요. 한 사람이 손톱만큼 달라지는 게 모이면 큰 변화가 되는 거니까. 그래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라는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변화의 폭이 좀 더 커지도록 돕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장치가 뭘까? 라는 생각이요.



 





#3 달팽이와 병아리


지원님 개인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우선 크게는, 저는 세상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은 일잘러와 좋은 리더가 되는 거예요.

 

스스로 일잘러라고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은 어떤 거예요?

 

만족을 할 수 있을까요? 항상 일하면서 호된 교훈을 얻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생각처럼 제가 쉽게 바뀌지 않더라고요. 달팽이같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재밌어요. 당근을 받을 때도 있지만 채찍을 맞을 때도 있잖아요. 채찍을 맞으면 아프지만, 하이퍼모드가 되는 느낌도 받아요. 물론 안 맞는 게 제일 좋겠죠. 같이 일하는 현영님이 ‘채찍은 본인이 스스로 주고 남들에게는 당근만 받는 게 베스트 아닌가요.’라고 말해주셔서,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장이라고 하셔서 생각났는데, 트레바리는 멤버들의 성장을 돕는 서비스잖아요. 크루의 입장에서 고객의 변화를 캐치한다는 게, 어려우면서도 꼭 필요한 일일 것 같아요.

 

맞아요. 직접 북클럽에 들어가서 즐겁게 토론하고 뿌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방법인데, 저희는 후기를 읽으면서 뽕을 맞아요. 또 저는 운영 크루로서 신규 파트너 분들에 대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그분들은 트레바리의 효용을 더 많이 느껴서 지원해주셨을 테니까, 얘기를 들으면 감정이 더 부푸는 것 같아요.

 

그럼 리더로서의 고민은 어떤 거예요?

 

제가 과분하게도 안국 아지트 리더를 맡고 있는데, 사실 병아리 리더거든요. 원래 앞에 나서서 일하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유학생 때 작게 경험해본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믿고 업무를 위임하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때 ‘모두가 리더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열심히 하는 실무자가 되겠다.’라고 생각했었죠.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역할이 주어지면 해야 되니까요.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크루 중에 훌륭한 리더들이 계셔서, 그분들이 어떻게 하시는지 여쭤보면서 배워가려고 해요, 너무 뽕을 맞았나?

 

트레바리는 어떻게 그만큼 뽕을 잘 놓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그냥 뽕 잘 맞을 사람들을 뽑는 것 같기도 해요.

 

 

 


 

#4 건강한 삶을 위해

 

지금 멤버로 참여하시는 클럽은 어떤 거예요?

 

[헬시어]랑 [씀에세이-둘금]이요.

 

[헬시어]는 피트니스에 대한 클럽인가요?

 

그렇지는 않고, 전반적으로 건강한 삶에 대한 북클럽이에요. 지금까지는 식생활과 마인드풀니스에 관한 책을 읽었고요. 건강해지고 싶어서 선택했어요.

 

몸건강과 마음건강을 모두 다루는 거네요. 건강이 지원님의 중요한 화두였나요?

 

네. 예전에 아파서 휴학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있어서, 죽기 싫으니까 건강해지고 싶어서 신청했어요.

 

모임에 나가면서 바뀐 점이 있나요?

 

제가 콜라를 좋아해서 많이 마셨는데, 9월부터 두 달 동안 콜라를 안 마셨어요. 사실 어제 세 모금 마시기는 했어요. 하지만 잘 유지하고 있어요. (웃음) 모임에서 서로 한 달 동안 지킬 걸 하나씩 얘기해보자고 했거든요. 다음 모임 때 다시 물어보기로 했기 때문에 더 지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집단 감시체제네요.

 

맞아요. 그것도 트레바리의 효용인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클럽들에서도, 꼭 책을 읽고 모임을 나가야 한다는 좋은 프레셔가 있기 때문에 책을 읽게 되잖아요. 독후감도 마감 기한이 없으면 안 쓰니까요.

 

[씀에세이-둘금]에서는 어떤 글을 쓰나요?

 

다른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독후감 대신 1000자짜리 에세이를 써가야 해요. 블로그에서 100일 글쓰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안 쓴지 한참 됐거든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했어요.

 

멤버로 참여한 경험이 업무에도 영향을 주나요?

 

확실히 멤버 분들의 피드백이 더 실감나게 들리고 공감이 되죠. 현장 감각이라고 할까요. 모임에 안 나가고 뒤에서 운영만 하는 거랑은 다른 것 같아요. 저 말고도 안국 아지트 크루들은 모두 모임에 나가고 계세요.


 




 

#5 걷는 존재

 

운영 크루는 수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근무하신다고 들었어요. 생활패턴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세요?

 

저는 괜찮아요. 원래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 하는 사람이어서요. 그런데 남자친구는 평일에 출근하고 주말에 쉬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입사할 때 남자친구도 너무 좋아하고 응원해줬는데, 데이트를 못하니까 점점 서운한 기색을 보이더라고요. 다툰 적도 있었지만 잘 해결해서 일주일 뒤에 결혼을 합니다.

 

와. 그러면 남자친구 분께도 트레바리를 영업해보신 적이 있나요?

 

지난 시즌에 [부부사기단]이라는 클럽을 같이 했었어요. 남자친구도 좋았다고 말하긴 하더라고요.

 

[부부사기단]은 어떤 클럽인가요?

 

우선 부부이신 클럽장님들이 계시고, ‘결혼하면 이런 게 좋아요’라고 사기를 친다는 컨셉으로 이해했어요. 하지만 요즘 늘어나는 비혼이나 기존 결혼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논의도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확실히 사기를 당했어요. (웃음) 얘기는 그전부터 이뤄지고 있었지만, 결혼도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더라고요.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인 결혼과 건강을 여기서 얻어가고 있네요.

 

그만큼 지원님의 삶에서 트레바리의 비중이 크다는 의미일 텐데, 입사 전후로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느껴지는 점은 무엇인가요?

 

그전까지는 허황되게 꿈만 큰 사람이었는데, 회사에 들어와서는 큰 비전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리고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과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실체가 없었다면 지금은 실체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계속 이어지기를 응원할게요. 마지막으로 본인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동사 하나를 골라주세요.

 

어렵네요. (고민 뒤에) 걷는다? 뛰는 건 아니지만 걷고 있다. 걷다.

 

목적지는요?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저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더 좋게. 오늘 너무 거창한 얘기만 한 것 같은데, 사실 저는 아직 삐약삐약 사회초년생 병아리랍니다. 꼭 적어주세요.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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