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클럽장이 말하는 트레바리
2022.09.23

장강명 클럽장은 올해 2월부터 두 시즌 동안 [벽돌책 읽기] 클럽을 진행했습니다. 평균 800쪽 이상의 벽돌책만 읽는 독서가들의 모임이죠. 지난 9월 3일 [벽돌책 읽기] 올해의 마지막 모임이 열린 날 장강명 님을 만나 그간의 클럽 운영 소회와 그가 새로 구축한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독서모임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벽돌책을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Q. 오늘이 [벽돌책 읽기] 마지막 모임이죠. 클럽 멤버 구성을 살펴보니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들만 신청하신 것 같아요. 벽돌책을 주제로 한 게 열심히 읽는 사람과 진지한 독서모임을 꾸리기 위해 설정하신 허들일까 궁금했어요.

장강명: 그런 건 아니었고요. 제가 조선일보에 한 달에 한 번 벽돌책 칼럼을 연재해서 매달 무조건 한 권 이상 벽돌책을 읽어야 해요. 어차피 읽는 거니까 트레바리도 그냥 그 책으로 하자. 저의 노동량을 줄이기 위해서 그런 거였어요. (웃음)

사실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오히려 이런 분들이 모인 것은 행운이었죠. 많이 읽으시는 분들 보니 반갑기도 하고, 얘기도 즐겁고, 독후감도 엄청나게 잘 쓰시고요. 문예 비평이나 문학 평론처럼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냥 대화의 무게중심을 책이 잡아주는 게 좋죠. 꼭 책 안에 있는 얘기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생각을 얘기하는 물꼬를 터주고, 내 얘기를 하는데 그게 가십으로 번지지 않게 경계를 쳐주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어요.


Q. 조선일보 벽돌책 칼럼에서 작년에 약 120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신 걸 봤어요. 다독가이자 애서가로서 책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해요. 트레바리와 읽은 책을 보면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 등을 골고루 안배하려는 의지가 느껴지거든요.

장강명: 고를 때 특별히 기준은 없고 저의 관심사가 반영은 되죠. 트레바리 클럽에서 읽은 책은 대단히 고민해서 구성한 것은 아니고, 제가 읽고 싶은 책 중에서 고르는데 소설을 하나 넣고 싶었어요. 제가 읽고 싶은 책이 딱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요. 보통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눈에 띄는 거 기록을 해두는 편이에요. 전자책 구독서비스를 이용하는데 거기서 업데이트되는 것도 살펴보고요. 그리고 벽돌책을 유난히 많이 쓰는 저자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스티븐 핑커 같은 사람의 책은 쭉 읽으려고 해요. 벽돌책을 많이 낸 글항아리나 사이언스북스 등 평소 신뢰하는 출판사를 따라갈 때도 있고요.



[벽돌책 읽기]에서 읽은 책들



Q. 요즘 가볍게 읽는 책도 많고, 트레바리 멤버 중에서도 책을 소통의 수단으로 생각하시는 분도 계세요. 벽돌책에 애착을 갖고 계신 것을 보면 책을 진지한 탐구의 대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장강명: 꼭 그렇진 않아요. 트레바리 시작할 때 저도 연구모임 같기보다는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랐고요. 저는 원래 책에 대해서 진지하고 엄숙하게 접근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몇 년 전부터 컬러링북이라든가 포토에세이, 대본집 등이 쭉 나오는 거 보면서 ‘저것도 책인가’ 그런 생각을 좀 하긴 했지만, 그냥 ‘가벼우면 어때’ 이런 생각을 하는 편이죠. 그런데 왜 벽돌책을 좋아하냐 묻는다면 벽돌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 기쁨이 있다고 생각해요. 얇은 책만 읽을 때 얻지 못하는 성취감이라든가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든가 그런 게 있죠. 클럽 소개에도 썼지만 분명 분량을 요구하는 생각들이 있어요. 그리고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거랑 바다에서 수영하는 거랑 다르잖아요. 폭넓게 경험하는 게 좋죠.



독서모임에 대한 애정도 무척 깊으세요


Q. 지난달 ‘그믐’이라는 온라인 독서플랫폼을 런칭하셨어요.

장강명: 그믐은 제 아내 김혜정 대표의 사업이에요. 아내랑 개발자, 스타트업하는 친구가 가볍게 최소 기능으로 ‘온라인에서 책 얘기를 하려는 사람이 진짜 있는지’ 가설 검증을 해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가능성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제 책 읽기에 적합한 기능, 책 얘기에 적합한 기능 등을 추가하는 중이죠. 아직 베타테스트 기간인데 그믐에 트레바리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제가 여기서 홍보를 해서요. (웃음)

온라인 독서모임이라고 해서 줌으로 진행하는 그런 모임은 아니에요. 다른 독서모임과 그믐이 차별화되는 점은 책을 읽고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읽어가는 과정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것이죠. 굳이 따지자면 그믐은 함께 뛰는 러닝 크루 같은 존재예요. 같이 뛸 때 조금 더 잘 뛸 수 있는 그런 역할이요.


Q. 강명 님의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에 보면 동명의 팟캐스트 진행을 위해 스태프들과 스프레드시트로 독서모임을 한 내용이 있어요. 오랜 시간에 걸쳐 온라인 독서모임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해오신 것 같아요. 똑같은 책으로 그믐과 트레바리, 온라인과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모두 해보셨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장강명: 아무래도 오프라인으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할 때의 즐거움, 또 그럴 때 생겨나는 타인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사람을 옥죄기도 하고 때로는 온기가 되기도 해요. 트레바리는 그걸 좋은 방향으로 잘 가꿔서 기분 좋은 곳이 됐죠. 서로 간의 예의, 책임감이 그 자리의 격을 높여주기도 하고, 그 코드를 지켰을 때 나도 덩달아 고상해지는 느낌도 있고요. 온라인에서는 그런 책임감이 없으니까 훨씬 자유로운 느낌이 들지만 오가는 대화가 그만큼 싸구려가 되기 쉽고 배설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거죠. 특히 트레바리는 값싼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태도가 걸러지는 효과도 있다고 봐요.

좀 이상한 비유일 수도 있는데, 저는 트레바리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이 떠올라요. 특히 ‘마녀 배달부 키키’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요. 그 세상에는 마녀조차 악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다 괜찮은 사람들이죠. 온라인에는 그보다 훨씬 천박하고 저질인 인간들도 쉽게 마주칠 수 있고, 현실보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감이 이상하게 더 커지는 공간이기도 해요. 트레바리는 제가 아는 현실 공간 중에서 가장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과 같은 분위기를 가진 곳이에요. 그믐이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해요. 대신 그믐이 추구하는 것은 모임을 위해 30만 원의 돈을 지불하기 어려운 분들, 지방에 계신 분들 내지는 주말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분들, 그런 사람들도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벽돌책 읽기] 클럽 마지막 날 멤버들과 비블리오 배틀을 진행하는 장강명 님



Q. 최근 신작 장편소설 재수사를 내셨는데요. 두 권으로 출판됐어요. 벽돌책에 대한 욕심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장강명: 저는 욕심이 있죠. 제가 막 고집했으면 한 권으로 나왔을 것 같은데, 제가 출판사를 오래 기다리게 했거든요. 여러모로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저도 출판사의 결정을 존중했어요. 그리고 출판사도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게 두 권이 돼도 팔릴 책인가, 두 권이 됐을 때 매출이 더 오를 것인가 따져보고 하는 결정이니까요. 오히려 그 정도로 재미있게 읽힌다는 거니까 다행이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죠. 원고 쓰면서 한 1,600~1,700매 넘어갈 때쯤 마음을 내려놨어요. 아마 한 권으로 내면 아마 800쪽 정도 됐을 거예요. 만약 책이 잘 팔리면 나중에 벽돌책 에디션 나오지 않을까요. (웃음)


Q. [벽돌책 읽기] 클럽은 이번 시즌으로 올해를 마감하고 내년에 다시 돌아오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쉬는 동안 트레바리 멤버들에게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장강명: 클럽 멤버들한테 한 번 추천한 책인데요. 『인생의 모든 의미』, 존 메설리라는 영국 현대 철학자가 고대 철학부터 지금까지 철학을 정리한 책이에요. 제 기준으로 벽돌책은 700쪽이 넘는 책인데, 이 책도 꽤 두툼하긴 하지만 700쪽이 안 되니까 벽돌책은 아니고요.

보통 철학서는 시대순으로 서술되어 있어요. 맨 처음에 소크라테스, 중간쯤 칸트, 뒤로 가면 프래그머티즘 나오는 이런 순서죠. 이 책은 그런 순서에서 벗어나 마치 실전 가이드처럼 철학을 설명해요.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파, 없다고 주장하는 학파, 알 수 없다고 하는 학파를 소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파를 또 나눠서 객관적으로 있다고 주장하는 학파, 주관적으로 있다고 주장하는 학파, 더 나아가 ‘인생의 의미는 뭐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파 이렇게 설명하죠. ‘인생의 의미는 이런 것’이라는 책 나름의 결론도 있는데 저는 꽤 동의해요. 너무 좋아하는 책이고 여러 번 읽었고 인생의 의미를 잘 모를 것 같을 때 읽으면 정말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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