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3년 동안 꾸준히 한 독서모임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지표를 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트레바리 독서모임 [넘버스]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계신 민석환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촬영 - 최성운 님)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제약회사에서 영업직을 하고 있어요.
본인과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가끔 좋고, 대체로 제가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영업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고 싶은데 미뤄두어야 했던 일도 있나요?
언론고시를 준비했었어요. 기한을 안 두면 나태해지니까 1년을 잡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조선일보 최종면접에 갔더니 역대 대통령 중에 누굴 좋아하냐고 물었어요. 진짜 그런 걸 묻더라고요. 또 동북아 정세에 대해 얘기해보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대답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전혀 못했어요. 시사를 공부했어도 자신의 언어로 논리를 갖춰 말하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요. 미련이 안 남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브런치라는 괜찮은 플랫폼도 생겼잖아요. 그때부터 저는 1인 미디어 시대가 오면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미디어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군대를 다녀와서 알바를 했는데, 한 달에 30만원 받으면 잘 받는 거였어요. 이것저것 하다 보면 금방 다 써요.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30을 벌었다가 0이 되고, 다시 30 벌었다가 0이 되는 시스템. 그러다 우연히 봤던 게 <대학내일> 리포터 모집공고였어요. <대학내일>이 저희 학교에 안 들어와서 저는 인지도 있는 매체인지도 몰랐어요. 지원자 중에 체대 나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면접 때를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창피한데, 그분들이 보기엔 백그라운드가 좀 특이했나 봐요. 호주에서 아파트 타일 까는 일도 했다고 하고. 경험을 높이 봤다고 하더라고요. 첫 기사가 지면으로 나왔을 때 행복했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하면 밥도 먹여주고, 취재비도 주고,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들어간 거였는데 그땐 정말 희열이 느껴졌어요. 내가 쓴 게 출판이 돼서 전국 대학교에 뿌려졌을 때.
[넘버스]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처음 통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업무적인 필요였죠. 사람들이 제약 영업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어요. 약들이 다 비슷비슷하니까, 의사들과 얼마나 친한지에 따라 실적이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 비슷해보였던 약들도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서로 다른 효과를 나타내는 게 드러나요. 저의 직무를 Medical Representative라고 하는데, 회사를 대표해서 약에 대한 지식을 전파한다는 의미에요. 현대의학은 증거기반의학을 따르고 있고, 가장 신뢰도가 높은 층위는 meta-analysis라고 논문들을 모아서 검증하는 단계에요. 제가 지식을 전파하려면, 의사를 설득하려면 논문을 가지고 가서 설명을 해야 하는데 모든 건 통계적 방법을 따르고 있어요. 지식이 당연히 필요한 거죠.
그럼 [넘버스]가 3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이유는 딱 하나에요. 통계라는 게, 여러 사람이 나눠서 주장하기 시작하면 산으로 가요. 네 말도 맞을 수 있고 내 말도 맞을 수 있다는 식이 되는데, 사실 통계는 그렇지 않아요. 그 중에 틀린 게 분명히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고. 전문가가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으면 대강 알고 넘어가게 돼요. 황승식 클럽장님이 계시기 때문에 [넘버스]는 유지되는 거예요.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시즌마다 다른 내용을 커버하는 거예요?
클럽장님이 매 시즌 사람들과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일을 즐거워하시는 것 같아요. 항상 시작할 때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들으면서 표시를 하세요. 공무원 2, 의사 1, 약사 2 이렇게. 사람들의 기대욕구를 예상하면서 이런 책들을 읽으면 더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시죠. 천상 학자세요.
한 클럽에서 오래 활동하시는 건, 계속 새롭게 배우는 게 있어서인가요?
새롭게 배우는 것도 있고, 복습도 돼요. 제가 통계학을 한 달에 한 번씩 3년 동안 공부했다고 해서 통달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계속 운동을 해야 몸 상태가 유지되는 거랑 똑같죠. 공부도 계속 배우고, 듣고, 알려고 해야 내 몸에서 안 빠져 나가요.
아까 스스로 겉으로는 가볍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진지한 얘기가 많이 나왔네요.
술자리에서는 이런 얘기 안 하죠.
술자리에서는 어떤 얘기하세요?
얼마 전에 트레바리 파트너 데이가 있었는데, 뒤풀이에 계셨던 분이 삼국지를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주위에서 ‘역덕’이라는 말 들어봤거든요. 다섯 시간 정도 삼국지 얘기만 했는데, 아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형, 혹시 종로에서 삼국지 얘기하고 있어요?’ 술집에 트레바리 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으니까, 누군가가 옆 테이블에서 자꾸 삼국지 얘기한다고 말했나 봐요. ‘어 그거 석환이형 같은데?’ (웃음)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조조요. 조조는 뛰어난 정치가였지만, 건안문학이라고 불리는 시조 형식의 창시자이기도 해요. 또 손자병법에 직접 주석을 달아서 신하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닮고 싶어서 좋아하시는 건가요?
저는 조조처럼 뭔가를 창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죠. 음, 삼국지 속의 장비는 굉장히 포악한 사람으로 나오잖아요. 실제로는 명사들에게 배움도 구하고, 자신을 굽힐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죠.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많으니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으세요?
그런 목표 세우는 걸 저는 별로 안 좋아해요. 낯간지럽고, 지키지 못하면 부끄럽잖아요. 단기적인 목표는 있어요. 파이썬으로 데이터를 크롤링해서 R로 분석하는 게 목표에요. 얼마 전에 강의를 들었는데 손에 안 익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 들으러 다닐 것 같아요.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시네요.
지금 데이터의 시대가 올 거라고 모두가 예상하잖아요. 그때 액션을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가 커요. 어렸을 때 저희 집이 부산교대 앞에서 레코드방을 했어요. 테이프랑 LP판을 팔았어요. 필름 가져오면 인화도 시켜줬어요. 아버지는 동아건설에 다니는 노동자였는데, 저녁에는 퇴근해서 필름 인화하고. 가게에 딸린 방 하나에 저랑 누나까지 네 식구가 살았어요. 연탄을 때우면서. 지금 돌아보면, 우리 가족은 사양 산업에 올인했던 거죠. 부모님 세대와는 좀 다르게 살아야 하잖아요. 시대의 흐름을 항상 인지하고 있으면서, 전문가는 되지 못해도 배우려는 액션 정도는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세대적 과업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현재 본인의 삶에 만족하고 계신가요?
네. 저는 뭐든 지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지표. 저는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고, 책을 읽고, 조금씩 글을 쓰는 일 세 가지가 동반되면 안정되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쌓인 걸 돌아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