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이 잘못된 이유?
2019.07.25


가난한 임산부가 제대로 먹지 못하면, 그 태아는 자라서 당뇨에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한정된 영양분을 두뇌에 공급하느라, 췌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기 떄문입니다. 당뇨라는 개인의 아픔이 가난이라는 사회적 환경과 맞닿아있는 셈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이와 같은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트레바리의 많은 클럽에서도 선택한 책이기도 해요. 오늘은 트레바리 멤버 송인근 님의 독후감을 소개해드릴게요. 인근 님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청소년들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함께 알아보실까요?






1. 작가님,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요?


내용도 좋지만 책에서 묻어 나오는 작가의 삶이 왠지 모르게 먹먹하게 다가왔다. 이 일을 왜 내가 나서서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꾸 되물으면서도, 폭력적인 사회에 맞서 약자들과 뒤엉켜 보냈을 그의 하염없이 긴 시간들이 눈에 그려졌다. 차별과 질병의 원인을 약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기득권에 맞서는 모습. 희미해보이는 인과관계를 또렷하게 밝혀내고자 기약없이 피해현장을 전전하고 수많은 문헌속에서 파묻혀 지내온 모습이 내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작년 말, 입사동기 두 명이 정리해고 비슷한 것을 당했다. 회사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당사자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단순히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어떠한 예고도 없이 '업무 평가가 좋지 않아서 연봉이 30% 삭감될건데 계속 다닐래? 그만둘래?' 라는 사실상 답이 정해져있는 한 마디 물음에 짐을 싸서 그대로 퇴사했다. 나는 그 사실을 다음날 출근해서 알았고, 그 다음날 출근길에는 갑자기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울음이 나올 것 같았고, 그리고 지금은 그 사건을 점점 망각해가면서 여전히 그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한때 정의롭게 살아가고자 했던 적이 있었다. 학교와 군대, 전 직장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벌이며 불의에 무릎 꿇지 않고자 나름의 방식으로 발버둥 쳤던 적이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처럼 사회에서 요구하는대로 순응하게 되었고, 내가 욕했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자'고 말하는 작가의 마지막 말에 진정성이 차고 넘쳐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난 한없이 작아진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난 도대체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할까 생각이 복잡해졌다.





2.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사고하고 공감한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안타깝다’고만 생각했던 나와 달리 유난히 감정이입해서 반응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사건 당시 의경 신분으로 경찰간부와 함께 관련 현장을 다니던 중 화장실 칸막이 너머 사람들이 울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피해자 아버지들이 문을 닫고 변기통 위에 앉아 입을 틀어막으며 오열하고 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이후로 그 친구는 전역 이후에도 집회에 나가고,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니며, 정신과 상담도 받게 되었다.


단순히 뉴스로 사고를 접한 나와 달리 그 친구는 두 눈으로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목격했다. 그 경험의 차이가 나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나와 그 친구의 차이, 경험한 자와 경험하지 않은 자의 차이는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동성애, 해고노동자, 직업병 환자 등 많은 사회문제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인간은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사고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계 밖에 있는 것들에는 무신경하거나 무자비하거나 속단하게 된다. 다른 성(性)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에, 열악한 노동자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없기에, 가난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은 무지한 채로 차별하고 혐오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3. 세상의 모든 디폴트값을 해체해보려는 노력


하지만 모든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경험의 경계를 넓혀 적극적으로 행동하자는 말은 너무나 유토피아적이다. 개인의 경험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왜 관심을 갖지 않고, 행동에 나서지 않느냐’고 말하기엔 눈 앞의 하루하루도 이겨내기 버거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개인의 범위에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내가 택한 부끄러운 답은 ‘내가 경험한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과, 주변의 모든 것에 의문을 던져보는 태도'라도 가져보자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은유 작가의 [내게 다가오는 말들] 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한 강연에서 그간 청소년을 만나면서 편견이 깨졌노라 고백하다가 '청소년들 정말 대단하다' 라는 발언을 했다는 걸 지적받고 알았다. 한 청소년이 말했다. "만약에 은유 작가님께 누가 '여자가 이런 글도 쓰고 대단하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무안함에 '땀뻘뻘' 상태가 된 나는 다른 섬세한 표현을 찾아보겠다며 사과했다”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사색하고 성찰하는 사람도 이처럼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실언을 한다. (그 부끄러운 경험을 책으로 써서 다시 한 번 성찰하고 독자와 공유하는 작가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는 관습과 기득권에 의해 형성된 수많은 디폴트 값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미숙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 등의 관념 & 남성, 이성애자, 대졸자, 비장애인, 기혼 출산자와 같은사회적 위치 등등) 그리고 인간은 그 디폴트값으로 채워진 제한된 환경속에서 제한된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른 채 편협한 사고를 하게 되고, 그릇된 확신을 하게 되고, 이는 차별과 혐오의 씨앗이 되서 사회에 퍼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디폴트값에 갇힌 채로 그 값을 벗어난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내 좁은 세상에서 경험한 바로 이 크고 다양한 세상을 얼마나 많이 속단하면서 살아왔을까 되돌아본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당연시 여겼던 이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지는 것. 섣부르게 입을 열기보다 내뱉을 말을 한 번 더 의심해보는 노력. 세상의 모든 디폴트값을 해체해보려는 노력. 이 최소한의 태도만이라도 놓지 말자.


‘세상의 모든 문제는 바보와 광인들은 항상 스스로 확신에 차 있으며, 현

명한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게 의문을 던지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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