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이라는 시간이 그런 것 같습니다.
2019.02.20
"그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살면서 저 시절 같은 친구들을 다시 얻지 못했다."


영화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의 등장인물, 고딘의 말입니다. <스탠드 바이 미>는 트레바리에서 한 시즌이 지날 때마다 생각이 나는 영화입니다. 극 중 고딘은 나이가 지긋한 꽤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는 신문에서 우연히 한 변호사가 칼에 맞아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 변호사가 어린 시절의 친구 크리스였기 때문이죠.



고딘은 곧장 크리스와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볼 빨갛던 시절, 고딘, 크리스, 그리고 번과 테디, 이렇게 네 아이들은 솔깃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숲 어디엔가 살해 당한 소년의 시체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얌전했던 고딘은 엉겁결에 소년의 변사체를 찾아 영웅되기 위한 모험을 떠납니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이 어처구니 없는 모험에도 밤은 찾아왔고 아이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묻습니다.



-만약에 남은 인생 동안 단 하나의 음식만 먹고 살 수 있으면 뭘 먹을래?

-너무 쉬운 문제야. 당연히 페즈 사탕이지. 체리맛. 이건 물어볼 필요도 없어.


-도널드덕은 오리이고, 플루토는 개인데.. 그러면 구피는 무슨 동물일까?

-당연히 개지!

-아냐, 구피는 모자를 쓰고 운전을 한다고. 개일 리가 없다고.



아이들은 실없는 토론을 무척이나 진지하게 하며 밤을 지새웁니다. 아이들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고 눈을 희번득이는 살인범과 맞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무엇이든 거리낌없이 말하고, 서로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와르르 웃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라서 그 순간과 우정을 영원히 그리워하는 어른이 됩니다.

트레바리에는 랜덤질문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많은 멤버분들이 즐겁게 당황하십니다. "당신의 마지막은 어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준비한 듯 대답을 잘 하는 멤버는 드물어요. 당연히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넉 달, 그러니까 한 시즌이 지나고 나면 나와 함께 책을 읽은 멤버가 장례식에서 어떤 노래를 틀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이 오길 바라는지, 몇 명이나 오면 좋겠는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는지 알게 됩니다.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고 유언장 쓰기 번개를 하거나 별 총총한 홍대 어느 건물 옥상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의 사연을 읽어주다보면 이런 얘기 하기가 쉬워지거든요. 꾸고 있는 꿈이 다르지 않아 쉽게 '우리'가 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이런 깊은 이야기는 작정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넉 달이라는 시간이 그런 것 같습니다. 오 월의 새순은 팔월 푸른 잎이 되고, 낯설었던 이들이 '우리'가 되는. 그래서 <스탠드 바이 미>를 보면 트레바리가 생각이 납니다. 중년의 고딘이 그리워하는 것이 이런 대화는 아닐까 하고요.

한 달에 한 번, 모닥불 앞에 모여드는 친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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