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면 하고 싶은 얘기가 이만큼 쌓이는데, 주변에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2018.10.23

트레바리는 '내 재미를 위한 훌륭한 도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트레바리를 '무언가를 기획하고 실행하기에 알맞은 공간'으로 정의하고 나니, 많은 것들이 가능해집니다. 하루 다섯 끼를 소화했던 여수 먹방 여행 번개나, 뮤지컬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들을 찾기 위해 제안한 독서모임과 같은 멋진 기획들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트레바리 독서모임 [식식-그린]을 거쳐 지금은 [북뮤지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계신 원현선 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인터뷰/촬영 - 최성운 님)





#1 나의 소울푸드는

[식식-그린] (이하 [식식])에서 파트너로 오래 활동하셨는데, 미식이 취미이신가요?


저는 미식가는 아니고 맛있는 걸 좋아하는 애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음식을 먹고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걸 좋아해서,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면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했죠.


그럼 모임에서 같이 음식을 먹나요?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궁금해요.


매번 힙한 음식이나 책 주제에 맞는 음식을 가져갔었어요. ‘맛있다는 느낌은 음식 자체의 맛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같은 주제가 자주 나왔던 것 같네요. 원래 저는 맛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다가, 1년 4개월 동안 [식식]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얘기를 하며 먹는 게 제일 좋은 식사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첫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잖아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도 하나요?


[식식]의 자기소개에는 ‘나의 소울푸드 말하기’가 꼭 들어가요. 무엇인지, 그리고 왜인지.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현선님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순대국이요.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어머니께서 정갈한 스타일을 좋아하셨고,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들은 대부분 싫어하셨거든요. 순대국을 처음 먹고 ‘세상에 이런 깊은 맛도 있구나’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가게별로 맛의 차이를 느끼고 평가를 내리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순대는 당면순대인지, 백암순대인지, 피순대인지. 국물은 맑은지, 푹 고았는지 아니면 들깨를 넣어서 걸쭉한 스타일인지. (웃음)


다른 분들의 소울푸드에는 어떤 게 있었나요?


떡볶이, 계란, 간장게장. 가지각색이에요. 한 번은 <매거진 F>의 치즈 편을 읽은 적이 있었어요. 치즈와 와인이 잘 맞으니까 둘을 함께 먹으면서 얘기를 했는데, 와인을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 아예 프랑스 지도를 그려 오셔서 와인의 떼루아(*프랑스어로 토양)에 대해 설명해주시더라고요. 떼루아가 포도에 영향을 미치고, 와인의 맛까지 이어지거든요. 저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분만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2 기획의 즐거움, 즐거움의 기획

네 시즌 동안 [식식] 클럽을 지속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에 음식 관련 책들이 쏟아졌잖아요. 읽고 싶은 책이 계속 나오는데 혼자서는 안 읽을 것 같았어요. 또 제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클럽이었고, 기획하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멤버들과 여수 여행도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운이 좋게도 첫 시즌 멤버가 모두 열정적인 분들이셨어요. 금요일 밤 11시에 모임이 끝나고 고속버스를 타서 새벽 3시에 여수에 도착했죠. 찜질방에서 잠깐 자고, 아침 8시 백반을 시작으로 게장, 장어탕, 갯장어 샤브샤브... 돌아올 때까지 다섯 끼를 먹었어요. 그런데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셨어요. 마음 맞는 사람들이 많아서 재미있었죠.


보통 파트너가 번개를 많이 기획하는 건가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제가 파트너를 하는 이유의 몇 할은 트레바리가 뭔가를 기획해서 실행하기에 알맞은 공간이기 때문이거든요. 일이 아니니까, 온전히 취미로 할 수 있어서 재밌는 것 같아요. 트레바리는 저의 재미를 위한 훌륭한 도구죠.


번개를 기획하는 기준은 어떤 거예요?


제가 좋으면 해요. 저 스스로 재밌으려고 하는 거니까요.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모여서인지 다들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거기서 또 동기부여나 만족감을 얻고요.


삶의 기준도 비슷한가요?


‘재밌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잘 살자’가 저의 모토에요. 커리어나 물질적 성공보다는, 내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삶.





#3 뮤덕의 견해

지금은 뮤지컬 관련 독서모임 [북뮤지컬] 의 파트너를 맡고 계신데, 뮤지컬에서 매력을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보통 음악보다 훨씬 더 서사가 있고, 감정의 폭이 깊다고 할까요. 춤을 보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오늘의 공연은 오늘 하루만 존재하는 거잖아요.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라는 점.


어떤 종류의 뮤지컬을 좋아하세요?


미간을 찌푸리고 봐야하는 뮤지컬이 있고 흐뭇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뮤지컬이 있는데, 저는 전자에요. 극을 향해 치닫는, 감정이 짙은 걸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누구인가요?


저는 한지상 배우님을 가장 좋아해요.


한지상 배우에게 빠진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16년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뮤지컬을 봤어요. 작품의 팬이 많길래 궁금해서, 당일 배우가 누군지도 모르고 남는 시간에 맞춰서 갔어요. 우선 극 자체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극이에요. 기가 빨린다고 해야 하나? 그때 한지상 배우가 압도적인 아우라로 공연을 이끌어나가더라고요. ‘난 괴물’이라는 넘버(*뮤지컬에 삽입되는 곡)를 부를 때 ‘저 사람 뭐지? 미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튜브에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죠.


<프랑켄슈타인>은 몇 번 보셨어요?


2018년에 올라온 3연은 지금까지 열두 번이요.


공연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반론을 제기하실 수 있을까요?


똑같다니요. 열두 번이 똑같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연기하는 감정의 깊이나 노선, 뒤에서 연기하는 앙상블 배우들까지 모든 날이 달라요. 그리고 회차가 늘어날수록 배우들이 디테일을 더해요. 캐릭터에 대한 해석을 더 불어넣는 거고, 그러면 대사 하나로 엔딩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도 있어요. 또 배우가 노래할 때 옥타브를 더 올린다거나, 음을 오래 끄는 날도 있고요.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라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해요. 그날의 공연을 놓치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거든요. 제가 못 본 날에 그랬다고 하면 배가 찢어져요.






#4 덕질의 역사

또 현선님이 애정을 가졌던 대상에는 무엇이 있나요?


고등학생 때 에픽하이 덕질을 했었어요. 가사에 깊이가 있고, 서사가 있고, 너무 좋은 거예요. 제 자아를 형성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데 기여했다고 할까요. 비록 지금은 순응적으로 살고 있지만. (웃음)


어떤 시기에나 지배적인 대상이 있었던 건가요?


네, 휴덕은 있지만 탈덕은 없다. 에픽하이, 개늑시, 뮤지컬. 그리고 프로듀스 101 당시에 워너원에게 한눈을 팔았다가 빠르게 돌아왔죠.


덕질의 대상과 현선님의 관계가 변화해왔다고도 말할 수 있을 텐데, 그 시기에 느끼는 감정이 있었나요?


미안함인 것 같아요. 그들은 한결같은데 제가 변하는 거거든요. 사실 일방적인 관계에 가깝잖아요. 저는 팬이라는 집단 중 한 명이고, 그들을 지지해주는 팬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그들은 계속해서 활동을 하는 반면 저는 공백기가 있어요. 대신 공백기 때는 제 시간이 더 많이 생기고요.


앞으로도 계속 덕질의 대상이 찾아올까요?


그럴 것 같아요. 만약 뮤지컬이 끝나도 다른 게 오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지 않을까 싶어요.


말 그대로 덕질의 역사네요. 그중에서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나요?


제가 본격적으로 뮤지컬에 입덕한 계기가 우연히 영상 하나를 본 거였어요. 뮤지컬어워즈 오프닝 공연이었는데, <렌트>의 ‘Seasons of Love’.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좋은 거예요. 매일매일 한 시간 단위로 돌려 듣다가 지금 이 지경이 됐죠. 사실 뮤지컬을 좋아하지만 ‘내가 이걸 왜 좋아하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도 많아요. ‘현선님은 뮤지컬을 왜 좋아해요?’ 라는 질문도 많이 받고요. 그러다 보면 항상 그 영상으로 귀결되는 거예요. 지금도 가끔 보는데, 매번 감동을 받아요. 가사도 좋은데, 노래 자체도 좋은데, 그 무대가... 미쳤어요.







#5 뮤지컬을 읽다

[북뮤지컬] 독서모임 기획을 직접 제안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제안하시게 된 거예요?


공연을 보면 하고 싶은 얘기가 이만큼 쌓이는데, 주변에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트레바리가 매개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소설 기반 작품들을 보면 전개가 급작스럽다고 느껴지는 게 많아요. 항상 책을 읽고 비교를 해보려고 했는데, 이걸 트레바리로 옮겨와서 책도 읽고 뮤지컬 친구도 만들면 좋겠다 싶었죠.


이번 시즌에는 어떤 작품들을 읽고 보나요?


9월에는 <키다리 아저씨>, 10월에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봤어요. 11월과 12월은 미정인데, 아마도 <마틸다>와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한 <더 데빌>을 볼 것 같아요.


발제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두 방향으로 나뉘어요. 첫 번째는 책과 뮤지컬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비교하는 거예요. 두 번째로 책과 뮤지컬의 공통적인 시사점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요.


다른 사람들의 감상에 영향을 받기도 하나요?


네. <키다리 아저씨>는 알콩달콩한 사랑 얘기인줄 알았는데 뮤지컬을 보니 제루샤(*여성 주인공)가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더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런데 어떤 분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서, 제루샤의 성장담이 아닌 제르비스(*남성 주인공)의 성장담으로 보셨다는 거예요.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죠.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끼리만 주고받을 수 있는 특별함도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제가 뮤지컬 덕후 용어를 써서 얘기하면 십분의 일도 이해 못하실 거예요. 축약어가 많거든요. 그런 걸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죠.


궁금한데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말하려니까 웃긴데, 내가 오늘 블퀘 오블통 고속도로 앞에 앉았는데 앞에 시방 있고 계속 수구리, 폰딧불이에 아주 관크밭이었어.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웃음)


사실 [북뮤지컬]에는 덕후만 계신 게 아니라 입문자가 훨씬 많아요. 자제하려고 노력하고, 멤버 분들께도 혹시 대화 중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봐달라고 해요. 네이버에 검색하셔도 안 나온다고. 저의 이번 시즌 목표는 용어사전을 만들어서 나눠드리는 거예요. (웃음)

취향과 관심사를 함께 나눠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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