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담배를 끊었으니 한 대 정도는 피워도 돼"라며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는 건강에 좋죠'라며 설탕을 무지막지하게 들이붓는 캐릭터만 나오는 열한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커피와 담배'입니다. 이 영화가 1984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같은 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며 짐 자무쉬는 단숨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젊은 시절의 짐자무쉬. 심지어 거장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어떤 평론가들이 무려 '짐 자무쉬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극찬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패터슨>인데요. '커피와 담배'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과연 '페터슨'은 어떤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인물일지 궁금해졌었죠. 그런데 이게 웬걸, 이런 바른 생활 사나이가 없습니다. 하필 직업도 버스기사인 패터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출근합니다. 점심에는 아내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을 먹고 저녁에는 아내와 식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겸 동네 바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십니다. 패터슨의 일상은 아주 간결하고,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하철에 서있어도 별로 눈에 띌 것이 없는 패터슨의 유일한 비밀 한 가지는 틈틈이 일상의 기록들을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서 시를 다듬어 나가는 것 외에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 영화 '패터슨'은 평범하지만, 그 일상에서 시를 건져 올리는 사람에 대한 영화입니다.
고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할 것 같은, 하지만 예술 문외한이 되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고개를 끄덕여야 할 것 같은 이 영화. 어떻게 봐야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요? 마침 책과 영화를 함께 보는 독서모임 [북씨]에서 같은 영화를 선정한 두 개의 클럽이 있었습니다. [북씨-체리]와 [북씨-둘금]입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멤버들은 어떤 책을 읽기로 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 - 1905시즌 [북씨-체리]
" 페터슨과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연결해놓다니, 이 세상 센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혜리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아무도 청탁한 적 없는 글을 스스로 쓰기로 결심한 한 작가의 에세이입니다. 다 큰 손녀에게 물구나무 서기를 잊지 않고 하고 있는지 묻는 할아버지와 다정한 연인의 그을린 피부를 섬세한 언어로 그려 냅니다. 패터슨과 이슬아는 모두 아무도 시킨 적 없지만, 자신의 일상을 글로 남기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패터슨이 시를 쓰는 것처럼, 슬아가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나도 내 일상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김선중님
다른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을 섬세하게 들여다 봤을 뿐인데, 내 일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문학과 예술의 신비로운 점일 것입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1905시즌 [북씨-둘금]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평범하게 돈을 벌고, 평범하게 밥을 먹고,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이별하고, 평범하게 죽게 될 것입니다. 이런 평범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기억되게 될까요? '패터슨'이 던지는 질문은 시를 잊고 살기 쉬운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북씨-둘금]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었습니다. 멤버들이 책에서 길어올린 시 한 줄씩을 여러분과 나눕니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이렇게 잊었던 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평범한 나날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사랑하게 해줍니다.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과 결별이 함께해야 생명이 있는 것이다' - 김경환 님
'별이 되고 싶으면 그별을 비추어주는 사람이있어야하고, 별을 갖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그 별을 비추어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만인의 스타가 될 수는 없지만, 부모의, 자식의, 친구의, 연인의 스타는 될 수있다. 가까이에서 서로를 비춰 주는 그런 존재, 우린 그것 하나를 갖고 싶은 것이다.' - 김정민 님
"패터슨에서 주인공은 매일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있지만, 성냥곽 하나에서도 의미를 찾고 시를 썼다." - 김정민님
'패터슨'을 본 두 개의 북씨 멤버분들을 만나고 나니 이렇게 인사하고 싶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다음 날 또 출근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우리, 여전히 의미를 찾고 영화와 책을 보고 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로군요! 하고요.
여전히 의미를 찾고 영화와 책을 보고 시를 이야기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