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3년이면 책을 쓴다
트레바리 3년이면 책을 쓴다
2022.08.24

독후감도 버거웠던 내가 트레바리와 함께하니 책을 썼다.


트레바리 클럽 [북씨-셋토밤] 이야기입니다. 매달 세 번째 토요일 저녁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에서 만나 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고, 나아가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했어요. ‘셋토밤’ 일곱 멤버가 시간, 공간, 행복, 편견, 여행, 취향, 어른이란 일곱 개의 주제를 가지고 책과 영화에 관한 글을 모아 『세번째 토요일 밤, 읽고 보고 씁니다.』 책으로 엮었습니다. 셋토밤의 문용빈 파트너와 김찬규, 신동언, 안태훈 님을 만나 어떻게 책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왜 이렇게 셋토밤을 좋아하게 됐는지 들어봤어요.


(좌측부터) 김찬규, 문용빈, 신동언, 안태훈


Q: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문용빈: 저는 카카오 픽코마라는 웹툰 플랫폼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전략기획실에서 다른 회사에 투자하거나 다른 회사들과 협업하는 대외 업무를 7년 정도 했습니다. 트레바리는 2019년 초부터 참여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클럽으로 시작했는데 이후에 셋토밤을 하면서 파트너를 맡았고, 그때부터 이번에 책을 만든 멤버들과 함께했어요. 최근 시즌까지 한 3년 정도 되네요. 


신동언: 저는 의류 수출벤더사에서 해외 영업을 하고 있어요. 용빈 님이 파트너였던 셋토밤으로 처음 트레바리를 시작했어요. 다른 북씨 클럽에도 참여했는데 역시 셋토밤만한 클럽이 없다고 생각해서 계속 함께하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습니다.


안태훈: 저는 공연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업계에서 일한 건 7년이 좀 넘었는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오히려 예술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예술을 더 못 봐요. 그래서 2019년 당시에 굉장히 메말라가고 책도 거의 안 읽는 상황이었죠. 혼자서는 절대로 안 읽으니 같이 읽는 것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트레바리에 오게 됐어요. 


김찬규: 저는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센터에서 의학물리학자로 일하고 있어요. 트레바리는 다른 클럽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책과 영화를 다 좋아하기도 하고 북씨라는 클럽명이 흥미로워서 2019년 가을, 다른 분들보다 한 시즌 늦게 셋토밤에 들어왔죠. 



같이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됐죠.


Q: 다들 셋토밤을 여러 시즌 계속하셨어요. 언제, 어떻게 책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시작된 건지 궁금합니다.

문용빈: 멤버들과 독후감이라는 형태로 글을 계속 같이 썼잖아요. 저는 파트너로서 모든 멤버들의 독후감을 읽고 거기에 댓글을 달아야 했는데, 처음에는 엄청 힘들었어요. 그런데 시즌을 거듭할수록 상대의 글 쓰는 스타일을 알게 되고 점점 이 사람의 글에 진심이 담기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게 보이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됐죠.

인생 목표 중 하나가 서른 살에 독립출판을 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혼자서 글을 쓰려니 완성하기가 힘들 것 같았어요. 이 멤버들과 글을 쓰는 게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서 책을 한번 써볼까 하는데 동참하겠냐 물었죠. 그게 한 1년 전이에요. 1년 동안 느리지만 열심히 준비했어요.


안태훈: 별다른 목적 없이 만나서 이야기가 잘 통하고, 뭔가를 할 때 이질감 없이 모두 “좋아!”라고 하는 멤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여기가 그랬어요. 전시든 영화든 뭘 보러 가자고 하면 “무조건 너무 좋아!”하니까 어떤 걸 던져 놓아도 재밌게 진행될 수 있는 거예요.


김찬규: 용빈 님이 책을 내보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바빠서 안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한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다들 “하자!”고 했어요(웃음). 1년 이상 꾸준히 본 멤버들이 5~6명 정도 되는데요. 그럴 때 모임에 어떤 특색이 생기는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와 아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여 있을 때의 독서모임은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요. 


Q: 책에 담긴 스물한 개의 글은 그간 함께한 시즌에 걸쳐서 고르신 건가요?

문용빈: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책은 모임의 연장선에 있는 느낌으로 모임에서 했던 주제도 있고 새로 넣은 주제도 있어요. 이미 했던 주제도 책과 영화 페어링을 다 새로 했고 글도 완전히 다시 썼죠. 트레바리 모임에서는 파트너인 제가 페어링하거나 투표로 정했는데, 이번에는 주제만 같이 정하고 각자 페어링했어요. 같이 보고 같이 토론하고 글을 쓰지는 않았죠.


김찬규: 스무 개가 넘는 주제를 올려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 일곱 가지를 투표로 골랐어요. 주제에 따라 나는 이 책과 이 영화에 관해 쓰겠다는 제안을 먼저 했고요. 트레바리에 독후감을 제출하면 같이 보는 것처럼 각자 쓴 초안을 함께 검토하고 글을 수정하면서 서로의 페어링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이 글과 이 페어링은 어떤 면에서 잘 연결되는 것 같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더 개인의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얘기들을 나누었죠. 트레바리를 할 때 독후감을 쓰면 모임을 하고 끝이 나잖아요. 거기서 한 발짝 정도 더 나가는 형태로 진행이 됐어요.




Q: 독립출판 개념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출판에 접근하기 쉬워졌지만, 막상 책을 만든다고 하면 편집부터 디자인까지 할 일이 많은데요.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셨어요?

문용빈: 제가 원래 하는 일이 좀 많아요. 개인 프로젝트로 계간지를 만들고 있거든요. 그래서 인디자인을 다룰 줄 알고 인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출판에 대한 지식이 있었어요. 원고는 다 같이 보면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고, 디자인은 제가 만든 안을 멤버들에게 가지고 가서 의견을 받는 식으로 진행했어요. 표지디자인도 멤버들의 피드백을 받아서 색깔도 바꾸고 폰트도 키우고 그랬죠. 


Q: 이 책이 트레바리의 많은 멤버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 같은데요. 독립출판을 하고 싶은 다른 멤버들에게 해줄 조언이나 작업 과정에서 겪은 가장 큰 시행착오를 미리 알려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신동언: 너무 전문가처럼 쓰려고 하면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책과 영화와 내 이야기, 이 삼박자를 잘 녹여야 글의 완성도도 올라가고 진정성이 생기는데, 처음에는 막 비평가처럼 책과 영화를 분석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만 썼어요. 전문서적은 아니잖아요. 대단한 책을 만들겠다는 욕심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나 좀 더 내 삶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김찬규: 독후감을 보면 서로 다 다르잖아요. 그렇게는 책이 될 수는 없거든요. 책은 톤이 어느 정도는 일정해야 하고, 소재를 어느 정도 인용하고 개인적인 내용을 어느 정도 보태서 쓸 것인지 구성이 일정해야 하죠. 그런 가이드가 없으니까 처음에는 각자 평소에 쓰던 대로 쓸 수밖에 없었어요. 책 보시면 글마다 제목이 있고 그 밑에 페어링한 이유가 짤막하게 나오고 본문에 인용문을 넣었는데 그런 형식을 미리 정했으면 더 수월했을 것 같아요.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은 클럽은 분명 많을 것 같은데요. 글감은 분명히 모임 안에 충분히 있을 것이고 클럽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니까 그런 걸 잘 기록해 놓으면 뭔가 시발점이 생겼을 때 문을 좀 더 쉽게 열 수 있지 않을까요.



셋토밤 유니버스, 트레바리의 확장을 꿈꿔요.


Q. 기본적으로 멤버분들이 다 독후감을 열심히 쓰셨나 봐요.

문용빈: 처음엔 그렇지 않았어요.


신동언: 이제야 밝히지만, 저는 독후감 쓸 시간 없어서 노래 가사 써서 제출한 적도 있어요. 어쨌든 모임에 참가하고 싶어서.


김찬규: 처음에는 책과 영화에 대한 일차적인 글밖에 쓸 수 없었는데, 다른 멤버의 좋은 글에서 자극을 받고 독후감 쓰는 실력이 조금씩 늘었어요. 그렇게 서로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게 여러 시즌을 같이 할 때의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저랑 용빈 님은 계속 셋토밤을 하고 다른 분들이 그만뒀을 때 제일 아쉬운 점이 저분들 글을 읽고 싶은데 못 보는 거였어요. 새로 오신 분 중에서도 독후감을 잘 쓰는 분, 아는 게 엄청 많으신 분이 계시지만, 독후감을 쓰는 거랑 독후감이란 형식을 빌려 글을 쓰는 건 좀 다르니까요. 셋토밤 멤버들과 함께한 마지막 시즌쯤에는 각자 삶의 태도를 독후감이란 글을 통해 볼 수 있어서 진짜 재밌었어요. 그때도 나름의 퇴고도 하고, 그게 연습이었던 것 같아요.


Q. 트레바리를 하면서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은 게 감동적인데요. 각자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멤버들과의 추억일 수도 있고 용빈 님처럼 인생 한 지점의 목표일 수도 있고 각자에게 중요한 부분이 조금씩 다를 것 같거든요.

문용빈: 제가 원래 일 벌이기 대장이에요. 사람들이 저한테 일 좀 그만 만들라고 하거든요. 근데 일을 계속 벌여야겠다 생각을 한 게, 시작해 놓으니까 이 일이 하나의 생물체처럼 멤버들을 통해서 혼자 알아서 막 확장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계속 살면 되는 거구나 확신을 얻었어요(웃음).


김찬규: 저는 이게 저희가 했던 지난 셋토밤을 모은 축약본이자 새로운 형태의 셋토밤에 대한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기존 모임과 형태는 다르지만 각자가 선정한 주제에 맞는 책과 영화를 고르고, 그에 대한 글을 쓰고, 그걸 보면서 그 사람의 생각과 페어링을 궁금해하고, 내가 본 책이나 영화가 있으면 나도 같이 페어링을 해볼 수 있는 거죠. 개인이 더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셋토밤, 개인이 다 파트너가 되는 거예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셋토밤을 이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더 좋은 멤버들을 조금씩 계속 끌어들여서 판을 키우면 더 재밌어지겠다는 야심 찬 꿈도 꾸고요. ‘셋토밤 유니버스’ 언젠가 되겠죠(웃음).


신동언: 저는 패션을 전공했는데요. 어릴 때부터 시각적 자극을 쫓는 데 익숙했던 것 같아요. 글과 말로서 내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트레바리에서 처음 느꼈어요.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함께 성장하는 걸 서로 목격할 수 있어서 그게 정말 좋았어요. 빠르게 변하는 유행이나 자극적인 것을 쫓으며 살았는데, 이 책을 준비하며 그렇게 발산되는 에너지를 좀 더 내면으로 축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안태훈: 일하다 보면 다가오는 일을 빨리 해결하는 게 우선이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그걸 소화해서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습관을 가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돌아보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구나’ 찾게 됐어요. 

그리고 느슨한 연대에 대한 믿음을 발견한 것 같아요. 공동작업을 하면 우리는 아직도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기도 하고, 어떤 일정을 목표로 막 몰아가는 그런 경향이 있지 않나요. 용빈 님이 자기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고 얘기하는 것도 이 사람들이 조금 지지부진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맞춰가며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라 봐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리듬을 존중해 주면서 결과를 내기 위해 함께 가는 느슨한 연대에 대한 믿음을 경험했죠. 제 일상까지 그런 태도가 스며들게 돼서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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