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맥에 이 책 어때?
2022.09.16

독서의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독서 문화를 더욱 즐겁게 만들고 싶은 트레바리가 스퀴즈 브루어리와 협력해 맥주 ‘책맥’을 만들었어요. ‘책맥’은 독일 스타일의 라거 맥주인데요. 책을 읽으며 가볍게 마시기에 알맞게 라거 본연의 청량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깊은 풍미를 더했다고 해요. ‘책맥’을 마시며 책맥하고 싶은 책을 몇 권 골라봤어요.




『왜 파타고니아는 맥주를 팔까』

신현암 , 전성률 지음 | 흐름출판 | 2022


이틀(미국시간) 전 파타고니아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 일가가 소유한 약 30억 달러(한화 4조 2000억 원)의 회사 지분을 기후변화 방지와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한다는 뉴스가 발표됐어요. 쉬나드 회장은 이러한 결정을 발표하며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는데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도입하고 실천해온 대표적인 기업의 행보답죠. 


이 책은 파타고니아가 만든 맥주 ‘롱 루트 에일’ 사례를 통해 ESG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파타고니아는 2016년 ‘롱 루트 에일’이라는 맥주를 내놓으며 ‘지구를 구하는 맥주’라는 메시지를 던져요. 맥주 한 캔이 팔릴 때마다 나무를 한 그루 심거나, 수익금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요. 파타고니아가 제시한 방법은 더 근본적입니다. 바로 환경재생형 유기농업이죠. 추석이 가을철 수확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 위한 데서 기인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매년 곡식의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매년 새로운 작물을 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땅을 파헤쳐야 하죠. 옥수수에 이어 세계 곡물생산량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밀을 재배하기 위해 매년 거대한 규모의 땅이 갈아엎어지고, 흙 속의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배출돼요. 이렇게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파타고니아는 여러해살이 밀 품종 ‘컨자’를 원료로 맥주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컨자는 3m 넘게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특성이 있어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는데요. 이 특성이 롱 루트 에일이라는 상품명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어제 파타고니아 뉴스를 보면서 자연스레 브랜드를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한 벌 가진 파타고니아 플리스 꼭 해질 때까지 입어야겠다는 결심도 하고요. 책은 이러한 MZ세대의 가치 판단과 연결된 소비 특성을 예로 들며 브랜드의 미래가 ESG에 달려있음을 이야기합니다. 1부에서는 ESG 경영에 맞는 새로운 브랜드 언어로서 ACES 모델(적합성, 일관성, 효율성, 당위성)을 설명하고, 2~5부에 걸쳐 25개의 브랜드 사례를 소개하고 있어요. 닥터 브로너스, 록시땅 등 생활용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부터 60대 이상만 고용하는 가토제작소, 유통기한이 닥친 음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은 알버트 하인, 여성과 환경을 위한 콘돔을 만드는 서스테인 내추럴 등 세계의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글을 보면서 마트나 편의점 맥주 코너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하늘색 바탕에 구름과 산이 그려진 ‘PATAGONIA’ 맥주를 떠올리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동명의 다른 브랜드입니다. 아쉽게도 책에 소개된 ‘롱 루트 에일’은 국내에서는 판매되고 있지 않아요. 파타고니아가 만드는 맥주의 맛은 어떨지, 환경을 생각하는 만큼 훌륭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조승원 지음 | 싱긋 | 2018


맥주와 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 재즈, 고양이 등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관한 애정을 그의 글에서 많이 드러냈죠. 음식과 술도 그의 작품에서 특별하게 다루어지는 대상이고요. 작가 스스로 술 덕후이자 많은 덕후를 보유한 작가답게 그의 책에 나온 술에 대해 분석한 책도 있어요. 라디오 방송작가였던 저자 조승원은 이미 하루키를 다룬 책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내가 또 써야 할까 고민했지만, ‘하루키와 술’을 주제로 한 책은 일본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에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의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2018년에 발간된 책이니 그 이후에 더 발간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샅샅이 뒤져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냈어요.


“하루키는 라거와 에일 중 분명히 라거 쪽이다. 일단 소설에 나오는 게 죄다 라거 맥주다.” _p.49

“하루키 작품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맥주는 유럽산 라거 맥주 하이네켄이다. 이 맥주가 등장하는 장편 소설만 네 편이다. 초기작 『양을 쫓는 모험』(1982)부터 『태엽 감는 새』(1992)와 『스푸트니크의 연인』(1999), 『1Q84』(2009)에도 하이네켄이 나온다.” _p.52


그리고 라거와 에일의 역사, 하이네켄과 삿포로의 브랜드 스토리 등 맥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칩니다. 이어지는 장에서 하루키와 와인, 위스키, 칵테일로 이야기를 확장하고요. 저자는 하루키의 책을 읽다 보면 “음주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고 생생하다. 읽다 보면 도저히 술 생각을 떨치기 어려워진다. 맥주라도 있는지 냉장고부터 뒤지게 된다”고 말하는데요. 이 책도 상당히 음주를 조장합니다. 아예 ‘하루키처럼 맥주 마시는 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하루키의 에세이는 물론이고 장편 『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 , 그리고 단편 ‘5월의 해안선’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바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이른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한번 따라 해보기 바란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그것도 아침에 마시는 맥주는 한마디로 “끝내준다!”” _p.66


기차를 타고 아침에 마시는 맥주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하고 너무 좋은데요. 이렇게 특별한 기분도 좋지만, 사실 하루키의 대다수 작품에서 맥주는 일상적인 소재이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놓았다가 샤워 후 꺼내 마시는 맥주 같은 느낌이요. 그러니까 결론은 ‘집에 가는 길에 꼭 맥주 사가야지!’




『기차와 생맥주』

최민석 지음 | 북스톤 | 2022


앞서 소개한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에서 ‘기차에서 마시는 이른 아침의 맥주’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니 바로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기차와 생맥주』는 최민석 작가가 여행 잡지에 연재한 칼럼, 그리고 본인의 여행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더해 쓴 ‘픽세이(픽션+에세이)’ 네 편을 담은 신작이에요. 

최민석 작가는 『베를린 일기』, 『40일간의 남미 일주』, 『피츠제럴드』 등 이미 여러 권의 여행 에세이를 냈는데요. 이 책은 작가가 세계 곳곳을 여행한 경험을 소재로 창작과 인생, 그리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종횡무진 오갑니다. 예를 들어 맥주 기행을 하며 방문한 아일랜드 펍의 라이브 공연자들을 보며 소설가로서의 자신을 돌아보는 거예요.


“연주가 끝나면 어느 쪽이건 박수 한번 세차게 쏟아내고, ‘자! 끝!’ 이제 우리 인생 새로 시작합니다’라며 리셋하는 것 같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진지했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다. (…) 내가 이 기분을 이해하게 된 것은 소설가로 데뷔하고 5년이 지난 때였다. 『풍의 역사』라는 장편소설을 야심차게 냈는데, 세상은 마치 연주가 끝난 후의 아이리쉬 펍 같았다.” _p.60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최민석 작가의 유머 감각은 동일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책 후반부에 실린 ‘픽세이’에서 폭발해요. 보고타를 여행하던 작가가 맥주를 사며 제시한 신분증의 사진이 실물과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게 되고, 한술 더 떠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 오인되는 이 에피소드를 보면 그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데요.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에 작가의 상상이 가미된 것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킬킬거리기 딱 좋은 책으로 강력히 추천합니다.




『낮술』

하라다 히카 지음 | 문학동네 | 2021


표지를 보자마자 감이 왔어요. “이거 분명 맛있는 책이다!”

『낮술』은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고객인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도와드리는 ‘밤의 지킴이’ 쇼코가 퇴근하며 먹는 점심과 반주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입니다. 그녀의 지킴이 일은 아주 다양해요. 밤에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픈 아이, 혼자 있는 강아지를 돌봐주기도 하고,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할머니의 외출을 도와주기도 하고, 술 마시고 실언한 게 후회되어 잠 못 드는 유명 만화가의 하소연을 들어주기도 하죠. 아침이 되어 고객의 집을 나선 쇼코는 매번 다른 의뢰인의 집 근처에서 술과 음식을 같이 파는 식당을 찾습니다. 


점심 한 끼의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쇼코의 열여섯 가지 식사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의 사연을 자연스레 알게 돼요. 혼전임신으로 상대에 대해 잘 모르는 채 갑자기 결혼한 그녀의 결혼생활은 결국 이혼으로 끝이 납니다. 딸 아카리는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맡기고요. 딸과 함께 살고 싶지만, 밤 지킴이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환경을 제공하는 남편과 사는 것이 아이에게 좋으리라 생각해요. 쇼코에게 낮술은 전날 밤의 수고에 대한 작은 보상이자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에 빠지지 않고 깊이 잠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해요.


“마덮밥을 호쾌하게 후루룩 넘긴 뒤 매콤한 미소를 입에 넣고 맥주를 마신다. ‘마도 탄수화물이네. 오늘은 탄수화물로 몸과 마음을 채우자.’ 우설과 마덮밥도 함께 입에 넣는다. 기세 좋게 꼭꼭 씹고 다시 맥주를 마신다. (…) ‘나는 먹고 마시며 살아갈 거야. 살아 있으면 뭔가가 변할 테고, 그게 어디선가 그 아이에게 이어질 거야.’ 그거면 된다. 쇼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남은 맥주를 다 비웠다.” _p.124


쇼코의 음식에 대한 열정이 생생하게 묘사된 글을 읽다 보면 일러스트 없이도 쇼코 앞에 놓인 음식을 상상하게 돼요. 나아가 그 한 끼의 즐거움이 결국 삶의 활력이 되는 것을 공감하게 되고요. 책을 읽다가 침이 고이고 맥주가 당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그야말로 안주 같은 책 『낮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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