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매일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당장 필요한 정보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기도 벅찬데, 지금 내 인생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실 남의 이야기나 다름없는 ‘문학’에 관심을 가질 여유를 가지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문학을 읽을 여유, 대한민국에 그 달달한 게 아직 남아 있긴 한가? (사진=영화 ‘내부자들')>
그래서인지 실제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학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으며, 아예 문학과 담을 쌓는 사람들도 요즘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문학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문학을 통해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는 ‘꿀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데… 참으로 무모하게도 이번에 트레바리에서는 문학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문학에 입문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클럽을 새로 만들었는데요. 그것도 2개나 말이죠..!
도대체 트레바리는 왜 이러는 걸까요? 사실 이유는 너무 단순합니다!
세상의 빠른 변화 속도와 무관하게, 문학은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읽혀야 하며,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들기 위해선 문학의 힘이 계속해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효율성과 합리성의 기준에서만 바라보면, ‘문학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불필요한 일이고, 높은 확률로 ‘불편한 일’에 더 가깝습니다.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평생 경험하지 않아도 될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게 되고, 평소엔 인지하지 못 했지만 자신 안에 존재하는 불편한 감정과 욕망들과 마주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불편함을 느끼면, 그 감정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들이 당장에는 실용적인 도움이 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 불편함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성숙해지며, 장기적으로 이 경험들을 자신을 이해하고,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일말의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게 그동안 문학이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참조 - 안 보이는 것, 사소한 것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다.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많이 알아도 인간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지식과 정보를 현실에서 제대로 써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용적인 지식이나 정보일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질 때 더 폭발적인 힘을 가집니다.
‘북클럽 [입_문]’은 문학에서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느새 문학과 멀어진 사람들이, 문학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입문하기를 고대하며 만들어진 클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새해엔 북클럽을 꼭 한 번 하고 싶은데, 어떤 클럽을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그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면, [입_문]부터 입문해보는 게 어떨까요?
어쩌면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하고도 실용적인 정보는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는 일말의 단서를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르니까요.
(참조 - 어떤 시대든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했다)
(참조 - 소설읽기는 이처럼 자기발견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