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쪽짜리 책 네 권을 읽는 것과 800쪽짜리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체험입니다. 세상에는 200쪽에 담을 수 없는 사유가 있습니다. 그런 웅장한 사유에 한 번쯤 도전해보지 않으시겠어요? 완독하지 못해도 읽은 데까지만 독후감을 써오시면 됩니다.
[벽돌책 읽기] 클럽 소개문의 일부입니다. 트레바리의 독서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데요. 클럽 소개에서부터 ‘완독하지 못해도 된다’고 독려하다니 이런 클럽 소개는 처음이에요.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 클럽에서 읽는 책들은 7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거든요. 위 소개의 글을 쓴 장강명 클럽장은 평소 벽돌책만이 담을 수 있는 깊이 있는 지식, 복잡한 사유에 대해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벽돌책 칼럼도 연재 중이시죠. [벽돌책 읽기] 클럽은 올해 2월 처음 열렸고 9월 초 두 번째 시즌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간 읽은 책들을 소개해볼게요.
『지금 다시 계몽』, 스티븐 핑커, 864쪽
『컨버전스』, 피터 왓슨, 704쪽
『진리의 발견』, 마리아 포포바, 840쪽
『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872쪽
『한낮의 우울』, 앤드루 솔로몬, 1028쪽
『재난, 그 이후』, 셰리 핑크, 720쪽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808쪽
『순수』, 조너선 프랜즌, 828쪽
이요한 멤버가 무거운 책을 여기저기 끼고 다니며 읽은 흔적 / 사진ⓒ이요한
매달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어오신 멤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은데요. 이 클럽을 신청한 멤버의 독서량 통계를 보니 처음부터 각오를 하고 오신 분들 같아요.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은 4.5권입니다. 2019년에 비해 3권이 줄어든 수치로 SNS, 게임, 영상 콘텐츠 등 다른 콘텐츠 이용이 늘면서 독서량은 자연스레 줄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벽돌책 클럽을 비롯한 트레바리 멤버들을 보면 읽는 사람들은 꾸준히 읽고, 안 읽는 사람은 전혀 안 읽는 독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물론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트레바리를 찾아오시는 분도 있고요).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는 분들이 신청하셨지만, 벽돌책이 주는 성취감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재미난 점은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자기효능감이 대단히 차오른다. ‘이만큼이나 읽었다니!’ 이걸 다 읽으면 꽤나 만족감이 들 것 같았다. 심지어 중간에 가벼운 소설책을 읽었더니 이전보다 더 적은 시간으로 책을 끝낼 수가 있었다. 이게 바로 벽돌책의 장점인가?” _진O이 님
“벽돌책 읽기를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내가 예전과는 다르게 한 책을 끝까지 집중해서 읽어내는 독해력과 집중력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 이번 벽돌책 읽기 모임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조너슨 프랜즌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서 삶의 풍성함을 더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_이종선 님
단순히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 자연과학, 자서전과 소설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장강명 클럽장의 책 선정으로 평소 잘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을 피할 수 없었을 거예요. 우울증에 관한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혼자 읽겠다는 결심은 쉽게 하기 어렵죠. 트레바리는 독서 편식을 해소하는 것과 더불어 흥미가 없거나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을 담은 책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책을 해석하는 다른 관점, 혼자 읽으면서 지나쳐 버릴 것을 얻는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책의 두께만큼이나 그런 경험에 푹 빠지신 독후감도 눈에 띕니다.
“보통 책이야 잠깐 고통스럽게 읽어 해치우면 되겠지만 읽으면서 내내 반대 의견이 떠오르는 800페이지의 책을 끝내 읽어낸 것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그리고 함께 읽는 것에도 또 다른 의미가 있으니까. 또 함께 읽지 않았다면 아예 먼저 덮고 팔았을 책이기도 하고. 이 고통을 함께한 다른 멤버들의 독후감을 보니 재미있고 신기하면서 위로가 되고 토요일 모임이 기대된다.” _이요한 님
북토크 I에서는 섹슈얼한 사랑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아래 문항을 읽고 해당 인물을 연인으로서 사랑할 수 있는 정도를 0~10점으로 표시해주세요. _장강명 클럽장의 발제문 일부
장강명 클럽장은 평소 트레바리와 같은 독서모임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레바리의 활동을 즐기고, 클럽장으로서 아주 꼼꼼하고, 소설가인 그만이 쓸 수 있는 독창적인 발제문을 만들어 오시기도 했죠. 하지만 제한된 시간과 공간,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는 비용을 지불하고서야 트레바리 같은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하셨어요.
그의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에는 동명의 팟캐스트의 팀원들과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 온라인 독서토론을 한 방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그런 실험 끝에 시공간이 제약이 없는 온라인에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을 아내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의 확장으로써 트레바리와도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벽돌책 읽기]는 9월을 마지막으로 올해의 모임을 마무리하고 내년 상반기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더욱 강력한 벽돌책의 귀환을 기대해주세요.
장강명 작가의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벽돌책처럼 깊이 있는 지적세계를 탐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