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일을 하게 돼서 좋았어요."
"사람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일을 하게 돼서 좋았어요."
2019.04.30

2017년 4월부터 크루라는 이름으로 트레바리와 함께한 '성전'님은 아지트 운영 크루를 시작으로 현재는 파트너셀* 리더를 맡고 있다. 빵을 좋아하고 영화 포스터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 그녀는, 자신의 동그란 얼굴을 좋아하고 본인의 의견을 솔직하게 피력할 줄 아는 동시에 동그란 표정으로 동그란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트레바리의 토론 문화 전반을 관리한다고 하니 앞으로의 트레바리는 뭐든 다 잘 될 것 만 같아서 괜히 기분이 동그래진다.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밝은 날 진행된 인터뷰를 들여다 보자.

(파트너셀* : 트레바리의 조직 단위) (인터뷰- 최성운)



1. 선하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서



트레바리에는 멤버에서 크루가 된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성전님의 입사는 어땠나요?


저는 17년 1-4시즌에 처음 멤버로 참여했는데, 2월에 바로 면접을 봤어요. 심지어 1월 모임에는 나가지도 않은 상태였어요. 돌아보니 이상하네요. (웃음)


그럼 트레바리의 효용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셨을 때가 아닌가요?


제가 [독토] 클럽의 멤버였는데, [독토]는 넷째 주 토요일 클럽이라서 첫 모임 전에 미리 번개를 했었어요. 그때부터 너무 좋았던 거죠. 당시에 제가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까 멤버 한 분이 구인공고를 보여주셨어요. 그걸 보고 지원을 했고, 거의 합격까지 하고 나서 2월 모임에 처음 참여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만큼 빠르게 이직을 결심할 수 있었나요?


전부터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몰라서 시도를 못하고 있었거든요. 모수가 부족하지만 (웃음) 번개를 하고 나서 트레바리는 제가 목표했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제가 원했던 건 세 가지였는데요, 먼저 선하고 즐거운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전에는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저는 광고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들어보니까 사람들이 제일 기피하는 콘텐츠더라고요. 두 번째로, 광고 산업에서는 저의 기여가 바로바로 보이지 않았어요. 피드백이 빨리 오는 서비스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일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처음 입사해서는 어떤 일을 맡으셨나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직무가 나뉘어 있지 않아서 모든 크루가 운영 업무를 했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운영을 맡았는데, 마침 그 일이 제가 원했던 세 가지 기준에 부합했고요.


그 전까지 하셨던 일과 성격이 크게 달랐을 텐데, 적응이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성격상 일은 당연히 힘든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다른 곳에서 일을 할 때보다 여기에서 즐거운 포인트가 더 많을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저는 멤버들이 웃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압구정 아지트는 크루 공간과 독서모임 공간이 맞닿아있다 보니까 모임에서의 소리가 다 들리거든요. 웃음소리를 듣는 게 제가 여기서 일하는 이유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2.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있습니다



성전님은 그 뒤로도 오랜 기간 압구정 아지트 크루로 일하셨잖아요. 아지트라는 공간을 관리하는 일은 어땠나요?


원래 저는 제 방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입사 다음날인가에 수영님이 드라이플라워를 들여놓자고 하는 거예요. 고속터미널에 가서 꽃을 사다가 말렸는데, 그러면서 점점 공간에 대한 애착이 생겼던 것 같아요. 가구들도 제가 원하는 걸 사서 들여놓고요. 성수랑 안국이 더 세련된 느낌이긴 하지만, 압구정 아지트만의 키치한 매력이 있지 않나요? (웃음) 그리고 바가 있으니까 공용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기잖아요. 어떻게 하면 그 공간에서 소통이 많이 일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노력하셨어요?


우선 제가 자주 나가 있었어요. 사실 일하기에는 안 좋은 환경이지만, 거기에 있으면 파트너 분들이 많이 오세요. 그러다 보면 다른 분들이 합류하시면서 함께 이야기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정말 아지트 같은 느낌을 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아지트 크루로 일하시는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과 대면하셨을 텐데, 원래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시는 편인가요?


싫어하지는 않고, 딱히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편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만나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사람의 마음을 조금 얻었구나’ 싶을 때가 있잖아요.


말씀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웃음) 어떻게 하면 마음을 얻을 수 있나요? 노력하시는 방향이 있나요?

포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저의 부족함에 관대하더라고요. 오히려 억지로 가리기 시작하면 속을 더 알 수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어요. 요즘 하고 있는 일이라면, 잘못한 일이든 고마운 일이든 솔직하게 말하는 것. 그리고 할 말이 없을 때 억지로 말하거나 웃지 않는 것. 그러면 이상하게도 더 가깝게 여겨주시더라고요. 올해부터 파트너 셀을 맡은 것도, 제 나이에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일을 하게 되어서 좋았어요.


혹시라도, 그렇게 쌓인 친밀감이 업무에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는 않나요?


꼰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서로 간에 친밀함이 있으면 일이 더 잘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뭔가를 요청할 때도 덜 불편하고, 실수를 해도 한번 더 이해해줄 수 있고요. 진짜 동지라는 기분이 들어서 좋은 거 같아요. 파트너 분들을 생각하면 항상 고맙거든요. 돈을 많이 받으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희의 비전이 좋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계속 해주시는 건데. 그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몇백 명이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죠.


3. 트레바리 크루의 복지는 바로



파트너 셀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올해 1월에 처음 생겼는데, 몇 달 전부터 수영님에게 트레바리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어필을 했었어요. 면담을 하면서 수영님이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필요한 것 세 가지를 모두 엮어서 어필한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파트너 셀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저희가 정말 가파르게 양적으로 성장을 해왔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질적 성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현장에 있는 동안 오래도록 개선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들었고, 저 역시 동의하는 지점이 많았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멤버 분들에게 일일이 전달하는 방식보다 파트너 분들을 잘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쪽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요.


필요했던 이유는 이해가 가는데, 하고 싶다고 생각하신 건 어떤 이유에서였어요?


아까 말했던 내용과도 이어지는데, 어디 가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일해볼 기회가 있을까 싶었어요. 파트너분들이랑 함께하는 행사가 생각보다 잦거든요. 많게는 한 달에 열다섯 번이나 돼요. 그런데 그날은 정말 하루 종일 행복한 거예요. 몇 시간 동안 함께 신나서 트레바리 얘기를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정말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게 트레바리 크루의 복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회사가 빠르게 성장해왔는데, 성전님이 그리시는 미래의 모습이나 스스로의 역할이 있을까요?


얼마 전에 저희 셀에 새로 오실 분의 면접을 봤는데, 그분이 트레바리의 롤모델이 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고민하다가 제 [독토] 첫 모임이 롤모델인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그날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책을 다뤘는데, 저는 책이 진짜 재미없었거든요. (웃음) 그런데 토론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유전자라는 주제를 놓고 정말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는데, 신기하게도 저 역시 생각이 자꾸 떠오르면서 참여하게 되더라고요. 몇 년 뒤에도 제가 그때 경험했던 걸 사람들에게 여전히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토론으로부터 생각 하나를 가져가는 일이 유지되도록 하는 일.


좋은 토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솔직히 멤버 운도 중요하지 않나요?


처음에는 저도 운이라고 생각했는데, 클럽 기획을 얼마나 세심하게 다듬느냐에 따라서 실제로 멤버들이 잘 모이기도 하더라고요. 파트너 매뉴얼과 발제 가이드도 하한선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요. 그래서 희망이 있는 거 같아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마냥 운이라고 말해서도 안 되잖아요. 노력하면 충분히 퀄리티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더 생기고 있어요.


사실 이런 인터뷰가 무서운 게, 내가 한 트레바리는 별로였는데 쟤는 좋은 면만 본다고 생각하실까봐 무서워요. 분명히 알고 있거든요. 부족한 점이 많고, 모든 클럽에서 항상 좋은 토론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아는데, 저희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돈을 내고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네요. (침묵) 그러니까 저희가 더 빨리 열심히 해야겠죠.



4. 선의후리 先義後利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좌우명은 선의후리인데요, ‘이익은 나중에 생각하고 의로움을 먼저 따른다.’


성전님이 생각하는 의로움이란 어떤 건지 들려주세요.


이 책을 가져온 이유와도 엮여있는 것 같은데, 은유 작가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책이에요. 여기에 ‘내가 구상하는 좋은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라는 문장이 나오거든요. 사람들의 소득이나 고통의 크기에 따라 등급을 나누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걸 아는 게 의로움 아닐까 싶어요. 남의 못난 모습을 보고 ‘좋아져야 돼’라고 말하는 순간 선민의식이 되어버리는 것 같고요. 은유 작가는 솔직해서 좋아해요. 제목부터 투명해진다고 하잖아요.


스스로에게 솔직하신 편인가요?


네. 어떤 감정을 느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감정을 억지로 무시하거나 애써 좋은 감정으로 덮는 일은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럼 지금은 행복하세요?


약간 섬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로 저는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지금이 좋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네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대안을 못 찾았어요. (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 살아계시는 동안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선의후리라는 신조는 꼭 지켰으면 좋겠고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애정이 없으면 조바심을 내기도 쉬워지잖아요. 애정을 준 사람끼리는 같은 속도로 걸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으니까, 겉으로 티는 안 나더라도 ‘저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를 향한 관심이 있구나’ 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다시 생각해도 성전님은 파트너 셀이 천직이신 것 같네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속도로 걸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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