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옛날부터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 중에서는 리니지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옛날부터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 중에서는 리니지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2018.11.02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트레바리 대표 윤수영님은 (이하 수영님) 머리를 꽤 아프게 만드는 인터뷰이였습니다. 성장 과정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제가 잘 까먹더라고요…”라며 한참을 고민하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을 무심하게 던지기도 합니다.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그가 일부러 답변을 미룬 게 아니라 정말 그의 머릿속은 다른 화두들로 빈틈없이 차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트레바리 얘기입니다. 그 자신은 트레바리의 부속품으로서만 기능한다는 듯이 답변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 전부를 투입해서 자신보다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에게는 당연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 11월 현재, 트레바리의 멤버 수는 약 3500명입니다. 멤버 한 명이 한 달에 3시간 40분을 독서모임에 할애하니, 3500명이면 어림잡아도 1만 시간을 넘습니다. 트레바리의 대표는 한 달에만 1만 시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훨씬 거대한 시간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요. 그는 자신에게 어떤 의무를 부과하고, 또 어떤 약속을 내밀어 스스로 달리게끔 만들고 있을까요. 







#1 


트레바리의 비전이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잖아요. ‘친하게’는 사람들에 대한 것인데, ‘지적으로’는 세상을 타겟으로 하고 있어요. 어떤 이유에서 차이를 두었나요?


얼핏 기억나기로는 대구를 맞추기 위해서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세상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꿈이 커 보이잖아요. 저는 트레바리가 꿈이 큰 회사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사람이라는 단어에 따뜻함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면, 세상이라는 단어로는 스케일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수영님은 따뜻함과 큰 스케일 모두에 해당되는 사람인가요?


추구하는 쪽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계속해서 따뜻하고 싶어하는 건 확실하고, 이왕이면 크게 움직이고 싶어하는 것도 확실한 것 같아요.


꿈이 크다는 건 다른 인터뷰들에서 짐작할 수 있었는데, 따뜻해지고 싶다는 말이 흥미롭네요.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따뜻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프로는 결과로 얘기하는 거니까. 제 삶의 결과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데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좀 다른 얘기지만, 인간을 위한다는 게 꼭 주변 사람을 위하는 건 아닐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화성에 보낸다는 얘기를 하지만, 주변 사람에게까지 좋은 사람은 아닌 것처럼. 그러면 일론 머스크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애정이라는 건, 본인과 이해관계가 일치되어 있다고 믿는 집단에 가지는 감정 같아요. 누군가는 대한민국에는 애정을 갖고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에는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죠. 어떤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제 입장에서의 따뜻함은, 서로 다른 스케일의 이해관계들이 충돌할 때 그 충돌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스케일에 대해서 최대한 고민해보겠다는 자세인 것 같아요. 







#2


지금 본인이 잘하고 있는지의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저는 그런 생각도 거의 안하는 것 같고, 더 잘하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위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크게 관심 없거든요. 제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관심이 더 커요. ‘지금 내가 잘하고 있나?’ 보다는 ‘더 잘하기 위해서는 뭘 더 해야 하지?’.


지금 수영님의 모습을 A,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을 B라고 하면 언젠가 수영님이 B에 도달하더라도 그때는 또 C라는 모습을 추구하고 있겠네요.


그런 거죠.


평소 수영님의 글에서, 안주하는 것을 싫어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것 같아요. 내일과 연결된 오늘에 관심이 무척 많아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일을 사는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내일과 연결된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3


트레바리를 창업한 지 3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나요?


성장은 모르겠지만 많이 바뀌었죠. 엄청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그럼 성장 대신 변화라고 할까요?


성장했다고 말하려면 제가 3년 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어야 할 텐데, 더 좋은지를 판단하려면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야 하잖아요. 사실은 ‘누구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었냐는 물음인 거죠. 친구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매일 일만 하느라 다 멀어졌으니 오히려 퇴보한 것 같고. 회사에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냐고 물어봐도 애매해요. 1년차 트레바리와 2년차 트레바리와 3년차 트레바리의 대표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도 성장보다는 적응에 가까운 것 같아요.


SNS에 회사 운영이나 리더십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시잖아요. 예전에 썼던 글과 지금의 글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예전보다 생각에 대한 확신 수준이 확 낮아졌어요.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특정 시점에 특정 조건에 특정 대상에게만 옳은 얘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혹은 그마저도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예전보다 글이 덜 사이다스러운 것 같기는 해요. 조심스러워졌죠.


스타트업 대표는 아주 강력한 수준의 자기확신과 자기객관화가 동반되어야 하는 직업일 것 같아요. 수영님이 본인에게 가지고 있는 확신은 어떤 건가요?


저는 앞으로도 꽤 열심히 일할 것 같아요. 성실한 편인 것 같아요.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에게 점수를 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애가 좀 밝은 것 같아요. 


밝다는 건 낙천적이라는 의미인가요?


네. 약간 태생적인 낙천성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레슨의 기회로 받아들인다던가, ‘어린 나이에 벌써 이런 것도 겪어보고 멋있는데?’ 이렇게 받아들인다던가. 그 다음으로는 제가 큰 틀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일거고, 제가 만들고 싶은 스토리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해줄 거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아요. 공감보다는 응원이나 동의가 더 나은 표현일 수 있겠네요. 


본인의 삶을 스토리로 치환하는 거죠?


삶이 되었든 회사가 되었든, 스토리의 대의명분이라고 할 무언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것 같고요. 저는 그냥 앞으로도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 것 같아요. 좋은 스토리로 남고 싶어 하는 사람.







#4


자기객관화를 통해 본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부족한 부분은 엄청 많죠. 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고, 어디서 주워듣고 온 걸 스토리로 만드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아요.


트레바리 자체도 친구가 “내가 보기엔 넌 이걸 해야 할 것 같아”라며 추천해준 거였어요. 사람에 따라서 개인의 전문성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결하는 데에서 제 가치가 나오는 것 같거든요. 이건 몹시 불안한 일이기도 해요. 외딴 섬에 혼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닌 거죠. 개발자는 뉴질랜드에 떨어져도 먹고 살 수 있잖아요. 저는 끊임없이 저에게 맞는 맥락을 찾아서 그 안에 있어야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겁도 많고요.


내년쯤부터 트레바리에 시니어가 들어올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들과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죠? 객관적으로 저는 트레바리가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건 그 조직을 이끌어본 적 없는 사람이에요. 초짜 리더인 거죠. 회사가 성장해나갈 때마다 저는 계속해서 초짜일 거예요. 지금 크루가 18명인데, 한 번도 19명의 조직을 경영해본 적은 없으니까요. 인생 1회차의 태생적인 한계라고 할까요. 


스타트업 대표라면 누구나 같은 문제를 겪고 있지 않을까요.


남들보다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초짜다’라는 게 저에게 중요한 어젠다인 것 같아요. 스스로 준비되었다고 생각할 여지가 전혀 없다, 내 삶에는.


하지만 내가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요?


없어요. 적응하면 좋겠다,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에 가깝죠. 







#5


수영님을 제일 두렵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트레바리가 망하는 것. 혹은 트레바리가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성대로 가지 못하는 것. 


원래의 방향성이라고 하면요? 


저희에게는 팔릴수록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걸 팔겠다는 마음가짐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돈만 벌고 있다던가, 아니면 알량하게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구석에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다던가. 스토리가 끊기는 게 제일 두렵다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스토리가 갑자기 끊겨버리는 것.


그러면 죽음도 두려운 것이겠네요.


저 죽는 거 진짜 싫어요. 제 인생을 정말 좋아하고 사는 게 너무 행복한데, 죽음은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이니까요. 1초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는 건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 중 하나에요.


지금까지 얘기를 들으면서, 수영님에게는 마무리라는 단어가 중요한 적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 마무리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요. 


트레바리를 시작하기 전에도 비슷한 성향이었나요?


저는 옛날부터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 중에서는 리니지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누적되는 무언가에 관심이 컸지, 한 판 재밌게 하고 끝내는 것의 재미를 잘 못 느꼈어요. 







#6


'트레바리'라는 단어에는 ‘이유 없이 남의 의견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그러면 수영님에게도 큰 소리로 반대하고 싶은 의견이 있나요? 견딜 수 없는 편견이나 통념 같은 것이요.


제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걸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서 더 민감한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선의를 증명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 중 하나가 가난인 것 같아요. 진심으로 사회를 위해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근데 너 왜 돈 많이 벌어, 이런 태도 있잖아요. 누군가가 정말로 좋은 뜻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의 삶이 만들어내고 있는 영향이 좋은가 나쁜가로 판단해야 하는 것 같거든요.


만약 연봉도 적당히 많이 받고, 적당히 좋은 일 하면서 가끔씩 실수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데, 우리 사회는 완벽함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너무 희생을 덜했다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저지른 실수가 있으니 좋은 사람이 아니라던가. 그런 부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트레바리를 통해서도 ‘좋은 사람’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바뀌기를 바라는 건가요?


인식이 바뀌면 좋겠다는 걸 넘어서, 인식이 바뀌어야만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독립투사 정도의 의지 내지는 찢어지는 가난을 감수하지 않고도, 적당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 사회에 마땅한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아서 스스로를 적당한 방향에 맞추지 못하는 것 같거든요.


한국에는 양극단 사이 중간지대의 카테고리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 아니면 너무 대단한 위인 이런 식으로만 분류가 되는데, 사실 우리 대부분은 여기 어디에도 속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갈 데가 없으니까 적당히 끼워 맞춰지는 거예요. 양극단이 아닌 카테고리를 만들고 싶어요, 트레바리를 통해서. 


본인의 삶을 좋은 스토리로 만들고 싶다는 것과도 연결되는 이야기네요. 새로운 카테고리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네. 평범한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사는 유형의 사람을 만들고 싶다.





___


인터뷰 전에 수영님이 단 하나 부탁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이번이 트레바리가 윤수영을 인터뷰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때 그는, 자신과 트레바리의 이야기가 닫힌 텍스트로서 읽히게 될 약간의 가능성조차 경계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제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는 윤수영에 대한 사실만을 담았지만, 언젠가는 사실이 아니게 될 이야기입니다. 고정되는 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 인터뷰가 수영님을 설명하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섭섭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때는 다시 그때의 이야기를 읽으면 될 테니까요.


(인터뷰/촬영 - 최성운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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