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건 원래 힘들죠. 그 힘듦은 자신과 일에 대해 거리를 둘 때 해소될 수 있어요."
"일이라는 건 원래 힘들죠. 그 힘듦은 자신과 일에 대해 거리를 둘 때 해소될 수 있어요."
2019.03.25

어느 회사는 구성원 한 명이 매년 10억이라는 매출액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놀라운 숫자이죠. 구성원 혼자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성과가 가능한 것은 회사라는 '조직' 덕분일 것입니다. 조직은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게 하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회사는 개인에게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죠.


스스로를 "회사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자영업자 변호사"로 규정하고 있는 양지훈 님은 이러한 조직과 개인의 문제를 화두로 트레바리에서 두 개의 클럽을 이끌고 계십니다. 바로 [회사인간]과 [법률가들]입니다. 지훈님의 인터뷰 내용을 듣다 보면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두 개의 클럽이 사실은 '일'이라는 키워드로 관통된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요, 지금 당장 지훈 님의 이야기를 만나러 가볼까요? (인터뷰/사진 최성운 님)




1.오 년차 회사원에서 칠 년차 변호사로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법률가들]과 [회사인간]의 클럽장을 맡고 있고, 지금 7년째 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그전에는 두 곳의 회사에서 5년 동안 회사원으로 일을 한 경험이 있고요. 외국계 회사에서 1년, 국내 대기업에서 4년을 근무했어요. 회사원 정체성을 갖고 있는 자영업자 변호사라고 소개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두 정체성이 [법률가들]과 [회사인간]이라는 클럽으로 나타났다고 생각되는데, 그 부분은 조금 뒤에 질문 드리도록 할게요. 먼저,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하셨던 계기는 무엇인가요?


두 곳 다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였어요. 다만 제가 회사생활에 좀 맞지 않았어요. 조직형 인간으로서, 하급자로서 보여줘야 하는 태도들이 있잖아요. 그게 답답했던 것 같아요. 월급도 많이 받았고 직무에도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일을 하면서 30년간 쭉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들더라고요. 제가 방금 자기소개를 할 때 제가 한 일을 말씀드렸잖아요? 그만큼 일이라는 건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그리고 스스로 다른 정체성을 갖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신 걸 테고요.


자신이 진정으로 뭘 하고 싶고 뭘 싫어하는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 같아요. 저 역시 5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회사생활을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회사생활의 어떤 부분이 싫으셨던 건가요?


사실 직무 자체의 만족도는 높았어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소비자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목표도 이뤘고, 실적도 좋았고요. 그런데 일보다 그 일을 수행하는 환경과 조건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상명하복 문화가 굉장히 강한 회사였거든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나왔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의 속성보다 일의 조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공기업이 선호되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처럼요.


회사를 나오셔서 그전까지의 커리어와는 동떨어진 공부를 시작하신 셈인데, 원래 법학에 흥미가 있으셨나요?


아니요. (웃음)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사원 말고 다른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가장 앞섰던 거고,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제 적성에 맞으면서도 삶을 조금이나마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자격증이 변호사라는 결론을 내렸던 거예요. 다만 계산적인 욕망 외에도, 제가 상처받았던 회사생활을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서 변호사 자격시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노동법을 12학점씩 듣기도 했고요. 저 자신의 실패 혹은 회사 조직의 실패를 어떤 식으로든 밝혀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2. 함께 읽으면 더 잘 보여요, 회사라는 공간



이제 [법률가들]과 [회사인간]에 대해 여쭤볼게요. 한 클럽장께서 성격이 다른 두 개의 클럽을 운영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 텐데, 두 가지 클럽을 여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클럽은 저의 가장 큰 관심사 두 가지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할 수 있어요. [법률가들]에서는 사법의 현상 내지는 법리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통용되는지 알아보려는 거고, [회사인간]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회사라는 공간에 대해서 탐색해보는 클럽이에요.


탐색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이라는 것과 관련된 여러 조건들이 있잖아요. 시간적 제약, 공간적 제약, 제도적 제약. 그런 조건들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한번 관찰해보자는 거예요. 이를테면 근로자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제도적 제약에는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이 있을 텐데, 가장 중요한 제약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모른 채로 회사생활을 하잖아요. 일이라는 건 원래 힘들죠. 그런데 그 힘듦은 자신 혹은 자신이 일하는 공간에 대한 거리두기와 객관적인 성찰 없이는 해소될 수 없거든요. 근로자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재구성하는 건 굉장히 어렵고 먼 얘기지만, [회사인간]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가까워져보자는 거예요.


말씀하신 거리두기와 성찰은 어떤 방식을 통해 가능할까요?


트레바리에서는 모두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잖아요. 잘 선정된 책을 읽고서 조건들을 반추해보는 거죠. 예전에 주 52시간제와 관련해서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실제로 몇 시간 일하고 있으며, 우리 회사에서는 노동시간이 어떻게 측정되고 있고 내가 현행법상으로 받아야할 수당을 잘 받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거죠. 회사 내에서만 생활한다면 이런 생각들을 발전시킬 수가 없는데, 독서모임에 오면 다른 회사원들과 얘기를 나눠볼 수 있으니까요. 자신을 둘러싼 일의 조건을 점검하는 데 도움이 돼요.


그렇게 생각이 발전하더라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건 더 어렵지 않을까요?


멤버 분들 중에 퇴사 욕구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그분들이 오히려 책을 읽고 나서 자기 회사의 조건을 객관화해서 보게 되고,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일종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어떤 분들은 퇴사하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와서 그대로 실천하시기도 하고요. 순전히 독서모임을 통해서 누군가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죠. 다만 여기가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3. 클럽장이기 이전에 한 명의 멤버입니다



클럽에서 읽는 책은 어떻게 선정하시나요?


매 시즌마다 어느 정도 정해진 소주제가 있고, 주제에 맞는 입문서를 첫 책으로 배치해요. 그러면 두 번째 달에는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이른바 쌍이 맺어질 수 있도록 배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간혹 흥미로운 신간이 있으면 배치와 무관하게 넣는 때도 있어요.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강남 교보문고에 가보려고 노력해요. 정치사회 분야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인문 분야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보면서 눈에 띄는 책을 체크하는 거죠.


토론을 진행하는 지훈님만의 철칙이 있으신가요?


제가 일방적으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아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결론을 미리 상정해두지 않고 멤버들과 제가 발언을 주고받는 형식을 통해 더 좋은 토론이 가능하다는 생각이에요. 클럽 하나의 인원제한이 20명인데, 이 숫자는 트레바리 크루들이 고심해서 결정한 숫자일 거잖아요. 더 늘릴 수 있음에도 안 늘리고 있는 거죠. 왜냐면 우리는 소규모 독서모임이니까. 텍스트에 접근하는 방식을 클럽의 형식을 통해서 합의하고 있는 거고, 그러니 모두에게 의견을 개진할 최소한의 권리가 분배되어야 하는 거죠. 클럽장이 해석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물론 적절한 제어를 통해서 토론의 방향을 정비하는 일은 필요하니까, 그건 클럽장의 역할이겠죠.


클럽장 활동으로부터 얻으시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클럽장이든 멤버든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공통의 인센티브가 있다고 생각해요. 텍스트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 기본적으로 저 역시도 멤버 중 한 명으로서 똑같이 클럽을 이용하는 가운데 클럽장이라는 권위를 추가로 부여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같이 읽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다른 클럽장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봐요.


그 외에는, [회사인간]의 경우 실제 현장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일종의 필드 스터디로써 듣는다는 생각을 하고요. [법률가들]에서는 법조계 내에서만 횡행하는 논리들이 일반 대중에게 얼마나 수용 가능하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 확인하는 효과도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4. 노동법이 필요한 순간, <회사 그만두는 법>



최근에 <회사 그만두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하셨다고 들었어요. 저자로서 책을 소개해주시겠어요?


이 책은 한마디로 ‘화이트칼라를 위한 노동법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무가 안 맞거나 회사 조직과 불화하는 두 가지 상황에서 너무 큰 괴로움이 발생하는데, 보통 몇 년씩이나 지속이 돼요. 직무나 조직 둘 다 내부에서 바꾸기는 어렵잖아요. 그럴 땐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 회사를 쉬어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퇴사를 권장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사실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소 복합적이에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조직에 안맞는 사람은 회사를 나와도 된다는 메시지도 있지만, 안전하고 건강한 회사생활을 위해 염두에 두면 좋을 점들도 적혀있어요. 회사를 그만두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다행히 로스쿨 1기로서 수월하게 자격증을 취득하고 시장에 안착했지만, 보통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죠. 그걸 알기 때문에 양가적인 메시지가 포함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회사생활의 어려움이 개인의 잘못이 아닌 한국 회사조직의 문제 때문일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평소에도 글을 주기적으로 쓰셨나요? 퇴근하고 집필까지 하려면 무척 바쁘셨겠어요.


6개의 장이 있는데, 그중 두 장은 각각 ‘허프 포스트’와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내용이에요. 나머지 부분들은 새로 썼고요. 주로 주말을 이용했죠.


출간 소감은 어떠신가요? 독자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책을 쓰는 과정은 무척 힘들었어요. 원래는 큰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가 중간에 해지하고 작은 출판사와 계약했는데, 결과적으로 더 좋은 선택이 됐어요. 편집자님이 큰 도움을 주셨죠. 반응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요. (웃음) 회사생활의 고단함을 노동법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싶기도 해요. 첫 책인데도 좋은 매체에서 많이 소개해주셔서, 재밌게 인터뷰하러 다니고 있어요.




5. 회사인간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저술 활동 외에 <회사인간, 퇴사인간>이라는 팟캐스트도 운영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본업과 병행하기 쉽지는 않은 활동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건 거기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기 때문인가요?


회사는 떠난 지는 오래됐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회사생활의 감각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법무법인 소속이니까 자영업자로서의 속성과 회사원으로서의 속성을 함께 갖고 있고요.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 책도 쓰고 팟캐스트도 녹음하고 있지만, 이게 저만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회사인간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들을 대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저는 질문이 조금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웃음) 이것들 모두가 제 일이에요. 하나씩의 일이에요. 변호사라는 자격증이 주어졌기에 행운이었던 측면이 있지만, 모두가 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소중한 일들로써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일과 여가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두 개의 자아를 오가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일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결정하고 일터 밖에서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좋은 말씀이네요. 다소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일반적인 한국 회사의 병폐라고 하면 어떤 게 있을까요?


폭력적인 일상 문화가 강한 것 같아요.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주말에 뭐했는지 시시콜콜 물어본다거나 하는 일들이요. 일하러 모인 공간이니까 건조하고 중립적으로 일을 하면 되는 건데, 일상적이고 교묘한 폭력들이 회사생활을 힘들게 만들어요. 과학자들이 80~90년대에는 미세먼지가 더 심했다고 하잖아요. 이제 측정하니까 보이는 거예요. 회사 내에서도 미세먼지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들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데, 아직 정확하게 측정하지를 못하니까 설명하기 힘든 어려움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건조하고 중립적인 관계라고 말씀하셨어요. 바람직한 일터의 조건에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지금 준비하고 연구하는 분야이기도 한데, 인사평가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회사들은, 말하자면 사람의 직무능력과 성과를 놓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회사 내에서의 태도나 상사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태도와 성과를 분리해서 평가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준비인가요?


두 번째나 세 번째로 쓸 책에서 인사평가를 다뤄보려고 해서, 여러 논문이나 자료들을 모으고 있어요.



다음 책도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과 일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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